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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노동자상 뒤에 일장기…부산시는 두 달째 팔짱만

등록 2022-07-12 07:00수정 2022-07-12 07:49

부산 동구 초량동의 일제강제징용 노동자상 뒤에 설치된 일장기 구조물. 김영동 기자
부산 동구 초량동의 일제강제징용 노동자상 뒤에 설치된 일장기 구조물. 김영동 기자

“이기 아직도 있네. 쯧쯧.”

지난 10일 부산 동구 초량동 일제강제징용 노동자상 앞에서 최아무개(71)씨가 혀를 찼다. 노동자상 뒤에는 일장기·태극기와 ‘화해 거리’라는 문구가 걸린 철제구조물이 두달 넘게 세워져 있다. 스스로 보수 성향이라고 밝힌 최씨는 “강제로 일본에 끌려가 죽도록 고생했던 사람들 잊지 말자고 세워놓은 동상 뒤에 일장기를 버젓이 걸어놓은 건 대체 무슨 심보냐”며 “구청과 시청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녀상을지키는시민행동’의 말을 들어보면, 이 구조물은 지난 5월17일 극우단체 회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기습적으로 설치했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다른 시민들 손에 뜯겨나갔지만, 이들은 주변의 시선도 아랑곳 않고 구조물을 다시 세웠다. 지난달 중순에는 이 구조물 근처에 이스라엘 국기가 내걸린 또다른 철제구조물이 설치됐다가 같은 달 말 철거되기도 했다.

2019년 4월 이곳에 노동자상을 설치한 ‘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4일 “노동자상에 모욕을 주는 행위”라며 관할 지자체인 동구에 철거를 요구했지만, 어떤 조치도 답변도 듣지 못했다. 동구 안전도시과 도로관리계 담당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도로법에 따르면 노동자상도 불법 적치물이다. 국민 정서를 고려해 노동자상을 철거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단체의 구조물만 강제 철거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부산 동구 초량동의 일제강제징용 노동자상 뒤에 설치된 일장기 구조물. 김영동 기자
부산 동구 초량동의 일제강제징용 노동자상 뒤에 설치된 일장기 구조물. 김영동 기자

앞서 동구는 최근까지 부산시에 노동자상이 역사적 상징물에 해당하는지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노동자상이 역사적 상징물이라면, ‘부산 소녀상’ 보호·관리 조례 적용을 받아 철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부산시 도로관리과 도로관리팀 담당자는 “조례 적용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시민단체는 결정을 미룬 채 여론 눈치만 살피는 동구와 부산시를 향해 “역사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김미진 소녀상을지키는시민행동 집행위원장은 “부산시와 동구가 노동자상을 일장기 등 불법 구조물과 똑같은 불법 적치물로 취급한다는 게 납득이 안 된다. 노동자상이나 소녀상의 역사적 의미는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는 노동자상이 위안부 소녀상처럼 보호·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부산시와 동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산 위안부 소녀상은 2016년 12월 일본총영사관 앞에 세워졌는데, 우리 외교부와 일본 정부의 철거 요구에 이은 일부 보수·극우단체의 훼손 시도로 몸살을 앓았다. 논란이 계속되자 부산시의회는 2017년 6월 소녀상 보호·관리 조례(2020년 6월 일부 개정)를 만들었다. 동구는 2020년 8월 소녀상의 도로점용 허가를 승인한 뒤 지난해 3월 보호·관리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다.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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