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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에 ‘조개의 왕’ 산다…광안리 ‘조개잡이 성지’ 된 이유

등록 2022-07-03 14:57수정 2022-07-04 02:32

부산 광안리에서 조개 잡는 사람들
“구멍 내고 소금 뿌리면 조개가 쏘옥”
명주조개가 다수…‘조개의 왕’ 백합조개도
11년 뿌린 조개 대량번식한 듯…식용 적합
지난 1일 부산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주민들이 조개를 캐고 있다. 김영동 기자
지난 1일 부산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주민들이 조개를 캐고 있다. 김영동 기자

“와, 또 잡았어, 또. 저게 벌써 몇 개째야?”

지난 1일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부산 수영구 광안해변공원 모래사장 파라솔 아래서 30~40대로 보이는 피서객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그들의 시선은 허벅지까지 차오른 물속을 더듬어 뭔가를 열심히 건져 올리는 광안동 주민 박아무개(74)씨를 향해 있었다. 박씨가 왼손으로 부지런히 물밑 모랫바닥을 더듬더니 돌연 오른손에 쥔 호미로 바닥을 긁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그가 왼손으로 크기가 5㎝는 넘을 듯한 뭔가를 들어 올렸다.

“오늘은 좀 있다. 바람 때문에 파도가 좀 쳐서 그런지, 조개가 요 안쪽으로 들어와 있다.”

허리를 편 박씨가 함께 나온 동네 주민들을 향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한참을 더 바닥을 훑던 박씨가 뭍으로 걸어 나오더니, 모래사장 한쪽에 놓아둔 18ℓ짜리 플라스틱 통에 허리춤에 매어 둔 그물망을 뒤집어 조개를 쏟아부었다. 또 다른 25ℓ짜리 아이스박스는 이미 절반가량이 조개로 채워져 있었다.

지난 1일 부산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주민들이 조개를 캐고 있다. 김영동 기자
지난 1일 부산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주민들이 조개를 캐고 있다. 김영동 기자

박씨는 기자에게 “여기서 조개가 잡히기 시작한 지는 2~3년 쯤 됐다”며 “요즘은 일주일에 두세번 동네 친구들과 함께 조개 잡으러 나온다”고 했다. 잡은 조개는 국을 끓이거나 삶아서 비빔장에 무쳐 먹는다고 한다.

박씨 일행의 행동을 유심히 살피던 관광객 일부도 바지를 걷어 올리고 조개잡이에 나섰다. 연인으로 보이는 20대 남녀 한 쌍이 모래사장 바닥을 헤집어 조개 한 마리를 찾아내더니 환호성을 질렀다. 경남 진주에서 왔다는 대학생 김아무개(20)씨는 “물놀이로 더위도 식히고 조개도 잡을 수 있다. 이렇게 즐거운 피서가 또 있을까 싶다”고 웃었다. 초등학생 딸과 함께 온 윤아무개(50)씨는 “모랫바닥의 작은 구멍에 소금을 조금 뿌리고 물을 부으면 조개가 쑥 튀어나온다. 체험학습 차원에서 딸과 함께 이곳에 종종 나온다”고 말했다.

광안리해수욕장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조개는 대합과 생김새가 비슷한 개량조개(명주조개)다. ‘조개의 여왕’으로 불리는 백합 조개도 간혹 잡힌다. 조개는 인파가 몰리는 해수욕장 중심부가 아닌 백사장 양쪽 가장자리에서 주로 나온다.

조개들은 어디서 왔을까. 광안리 관할 자치단체인 부산 수영구가 2008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7월 관광객들의 체험 이벤트를 위해 뿌린 조개들이 대량 번식한 것 같다는 게 인근 주민들의 전언이다. 부산수산자원연구소 관계자는 <한겨레>에 “개체 수가 늘어났다는 건 모래나 펄 등에 조개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다는 방증”이고 말했다.

지난 1일 부산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주민들이 조개를 캐고 있다. 김영동 기자
지난 1일 부산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주민들이 조개를 캐고 있다. 김영동 기자

광안리에서 잡은 조개는 사람이 먹는 데도 문제가 없다. 수영구는 지난달 9일 이곳에서 채취한 조개를 부산수산자원연구소와 국립수산과학원에 보내 수산물 안전성 검사(방사능·중금속 함량)와 패류독소 분석을 의뢰했다. 결과는 ‘식용 적합’ 판정이었다.

수영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2019년 이후 중단했던 조개잡이 체험행사를 이달 31일 재개하려고 한다. 수영구 일자리경제과 농수산계 담당자는 “지난해 광안리 해변 근처에 비점오염원(빗물 등으로 불특정 지역에서 발생하는 오염원) 저감시설을 설치해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오염수를 최소화했다. 해변 근처에 우수와 오수를 분리하는 하수관로를 신설 확충해 더 많은 어패류가 서식할 수 있는 해변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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