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석유공사 울산정유공장(현 에스케이 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 준공식 모습. <울산의 기억과 기록>에서 발췌
5·16 군사반란으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부(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2년 1월27일 울산을 대한민국 최초의 특정공업지구로 지정했다. 울산은 일주일 뒤인 2월3일 울산공업센터 기공식과 함께 산업화·도시화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때만 해도 울산은 바다를 끼고 있는 한적한 농촌마을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일제강점 말기 조선총독부가 이미 ‘울산 공업항 및 공업도시 건설계획’을 세워 일부 추진했고, 1962년 특정공업지구 지정에 앞서 기업인 모임인 한국경제인협회가 울산공업센터 건설 건의서를 작성해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제출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경제인협회는 울산 현지답사를 통해 1만t급 대형 선박 대여섯척이 한꺼번에 입항할 수 있는 잔잔한 항만과 태화강의 풍부한 용수, 진출입 교통과 지형지물, 노동력 등 대형 공업단지 후보지로서 충분한 입지조건을 확인했다.
울산시가 특정공업지구 지정 60주년을 맞아 시 기록관에서 보관해온 1960년대 울산 공업단지 조성과 주민 이주, 도시계획 등과 관련한 문서·도면·사진 등 기록물을 담은 자료집 <울산의 기억과 기록>을 발간했다. 220쪽 분량의 자료집은 ‘울산공업센터 조성’과 ‘울산도시계획’ 등 두 부분으로 나눠 다양한 관련 기록물을 담고 있다. 자료집을 보면 지금의 포항제철이 애초 한일제철이라는 이름으로 울산에 건설될 예정이었으나 입지조건 등 여러 이유로 포항으로 변경됐던 사실도 알 수 있다. 또 울산공업센터 조성과 관련해 1965년 7월19일치 <뉴욕 타임스>가 “한국이 변방에 ‘피츠버그’ 같은 도시를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한 신문 기사도 소개하고 있다.
울산도시계획 부분에는 1962년 국토건설청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현상공모를 거쳐 완성한 울산시 최초 도시계획과 이후 변경 과정 등이 나온다. 특히 정유·비료공장 건설로 생겨난 철거민들의 새 정착지를 만들기 위해 처음으로 도시개발을 한 부곡·월봉지구 관련 기록 등이 눈에 띈다. 당시 울산시 도시계획은 중앙부처인 건설부와 국토건설청이 직접 마련하고, 울산시 안에 울산특별건설국을 설치해 실행했다. 한삼건 울산도시공사 사장(울산대 명예교수)은 “울산시 도시계획은 초기에 공업기지 건설에 치중한 결과 도시개발 계획에 소홀했다. 공업기지 건설 외에는 대통령이나 대기업의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울산 도시계획과 개발이 늘 뒤 순위로 밀렸고 인구 규모에 걸맞은 도시 인프라는 적기에 갖춰지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신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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