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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원자폭탄 피해자 2세’ 세상에 알린 김형률 추모비 건립

등록 2022-05-27 16:13수정 2022-05-27 16:44

반핵평화운동에 헌신했던 고 김형률씨의 추모비를 27일 한정순 ‘한국원폭피해자 2세 환우회’ 사무국장이 닦고 있다. ‘한국원폭피해자 후손회’ 제공
반핵평화운동에 헌신했던 고 김형률씨의 추모비를 27일 한정순 ‘한국원폭피해자 2세 환우회’ 사무국장이 닦고 있다. ‘한국원폭피해자 후손회’ 제공

“핵 없는 세상을 일구기 위해 삶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한국원폭피해자 2세 환우회’ ‘합천 평화의 집’ 등 원폭 피해자 후손들로 이뤄진 ‘한국원폭피해자 후손회’는 28일 원폭 피해자 2세이면서 반핵평화운동에 헌신했던 고 김형률(1970~2005)씨의 17주기를 맞아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경남 합천군의 합천원폭자료관 광장에 그의 추모비를 세웠다.

김형률씨는 원자폭탄 피폭 후유증이 자손에게 대물림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인물이다. 김씨의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일본 히로시마에 살다가 1945년 8월6일 원자폭탄에 피폭됐으나 다행히 목숨을 건져서 해방 이후 귀국했다. 1970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씨는 어려서부터 폐질환과 빈혈 등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백혈구 이상으로 면역체계가 약해지는 희귀 난치병인 ‘선천성 면역 글로불린 결핍증’이라는 것을 2002년에야 알게 됐다. 어머니에게서 대물림된 원자폭탄 피폭후유증이었다.

김씨는 2002년 3월22일 한국청년연합회 대구지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원자폭탄 피폭후유증을 앓는 원폭 피해자 2세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자신의 병이 단순히 개인의 아픔이 아닌 전쟁과 제국주의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며, 핵의 야만성을 고발했다. 원자폭탄 피폭후유증이 대물림된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에 처음 알려지면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병을 앓던 원폭 피해자 2세들이 전국 곳곳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원폭 피해자 2세들의 단체인 ‘한국원폭피해자 2세 환우회’를 만들어 초대회장으로 활동하며, 원폭 피해자 지원 특별법 제정 등 반핵평화운동에 앞장섰다. 하지만 특별법 제정을 보지 못하고 2005년 5월29일 면역 글로불린 결핍증에 의한 폐렴으로 서른다섯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 의료 지원, 피해자 추모 기념사업 실시 등 내용을 담은 국내 첫 원폭 피해자 지원법인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은 2016년 5월19일에야 제정했다.

문제는 특별법이 원폭피해자를 원폭이 투하된 때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있었던 사람과 태아로 한정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원폭피해자의 후손도 피해자에 포함시켜서 지원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한국원폭피해자 2세 환우회 회원은 1300여명에 이르는데, 피폭후유증을 대물림한 원폭피해자 후손의 전체 현황은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지난 2013년 경남도가 도내 원폭피해자 자녀 244명의 건강 상태를 조사해보니, 13.9%(34명)가 선천성 기형이나 유전성 질환을 앓고 있었다. 선천성 기형은 귀가 없거나, 손·발·얼굴·폐·심장 등에서 나타났다. 조사 대상의 9.1%가 장애인으로 등록해, 전국 장애인 등록률(5.0%)의 2배에 가까웠다.

고 김형률씨의 생전 모습. ‘한국원폭피해자 2세 환우회’ 제공
고 김형률씨의 생전 모습. ‘한국원폭피해자 2세 환우회’ 제공

한정순 ‘한국원폭피해자 2세 환우회’ 사무국장은 “‘원폭피해자 2세에게도 인권이 있습니다’라고 외치며, 핵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 고 김형률씨의 업적을 후세에 전하고 그 뜻을 영원히 기리고자 추모비를 세웠다. 김형률씨가 젊은 나이에 가고 벌써 17년이 흘렀지만, 원폭피해자 후손들의 인권은 아직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원자폭탄 피폭후유증의 대물림을 증명할 증거는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대물림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원폭 2세 환우들의 인권증진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터졌을 때 한국인은 7만여명이 피폭돼 4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해방 이후 생존자 2만3천여명이 귀국했는데, 대한적십자사 집계 결과 지난해 7월31일 기준 생존자는 2040명에 불과하다. 생존자 평균 나이는 81.6살에 이르렀다. 원폭2세 환우들이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원폭피해자는 머지않아 공식적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일제강점기 경남 합천군에서 강제징용된 사람들은 대부분 히로시마의 군수공장에 투입됐다. 이 때문에 합천군 출신자들의 원폭 피해가 컸다. 해방 이후 수천명의 피폭자들이 고향 합천으로 돌아오면서, 합천군은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게 됐다. 고 김형률씨의 부모도 합천군 출신이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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