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구 초량동 정발 장군 동상 근처에 세워진 일제강제징용노동자상에 일장기 등이 달린 구조물이 세워졌다.
22일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에서 직선으로 100여m 떨어진 정발 장군 동상 근처에 세워진 일제강제징용 노동자상 앞을 지나던 김아무개(65)씨의 눈살을 찌푸렸다. 노동자상 뒤에 철제 구조물이 설치됐고, 여기에 태극기와 일장기가 함께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화해 거리’라는 글도 붙어 있었다. 이를 본 김씨는 “일제에 강제징용된 한국 사람들의 희생을 기리는 노동자상에 누가 장난을 쳐 놓았냐”며 역정을 냈다.
이날 ‘소녀상을지키는시민행동’ 등의 말을 들어보면, 일장기가 달린 구조물은 지난 17일 밤 10시께 극우단체 회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 설치됐다. 이에 시민단체 쪽은 경찰에 신고했고, 현장을 둘러본 경찰은 관할 지자체인 동구에 이를 통보했다. 경찰은 또 이곳에 극우단체가 이달 말까지 집회 신고를 한 사실도 파악했다.
시민행동은 “노동자상에 모욕을 주는 행위”라며 분노했다. 시민행동 관계자는 “최근 극우단체가 노동자상과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기’ 등을 주장하는 집회를 열었다. 윤석열 정부가 한일관계를 개선하려고 하는 것과 맞물려 (집회와 모욕 행위가) 벌어지는 듯하다”고 봤다. 이어 “일본의 침략과 전쟁범죄에 대해 사죄가 배상이 없고 피해자들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화해를 입에 담을 수 있는지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동구는 구조물 처리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동구 안전도시과 도로관리계 관계자는 “강제철거 여부 등 법적·행정적 절차 등을 살펴보고 있다. 종합적으로 상황을 고려해 대응에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과 정발 장군과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있어 ‘항일거리’로 불리는 곳에 일장기와 함께 ‘화해거리’라는 펼침막이 나붙어 있다.
노동자상은 2019년 4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를 기억하고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뜻에서 시민 모금으로 세워졌다. 이를 주도한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특별위원회’(건립특위)는 2018년 5월1일 일본총영사관에 설치된 ‘평화의소녀상’ 옆에 노동자상을 세우려고 했지만, 정부와 부산시 등이 반대하자 정발 장군 동상 근처에 노동자상을 임시로 뒀다. 이후 건립특위와 부산시의 1년여 동안 첨예한 갈등 끝에 노동자상은 겨우 지금 위치에 자리 잡았다.
노동자상이 세워지자 건립특위는 노동자상과 평화의소녀상, 정발 장군 동상이 있는 이곳을 ‘항일거리’로 이름 붙였다. 이곳에는 일본 정부의 전쟁범죄 사과를 촉구하는 노동자상과 소녀상이 있고, 임진왜란 당시(1592년 4월14일) 동구 좌천동의 부산진성에서 군사와 백성 수백명과 함께 1만명이 넘는 왜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정발 장군 동상이 있어서다.
글·사진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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