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시민사회단체가 부산시청 광장에서 내년 4월 설계수명이 끝나는 고리원전 2호기 폐쇄를 촉구하고 있다. 탈핵부산시민연대 제공
부산시가 고리원전 2호기 수명 연장 등 지역 현안과 관련해 지나치게 새 정부의 눈치를 살핀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현안을 두고 중앙정부와 맞서던 문재인 정부 시절의 결기는 자취를 감췄다.
부산시는 최근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고리원전 2호기 수명 연장에 대해 ‘조건부 찬성’으로 입장을 바꿨다. 이런 결정은 지난 3월31일 열린 ‘부산시 원자력안전대책위원회’ 3차 회의에서 나왔다. 안전성 검토와 주민 의견 수렴 등의 조건을 달았지만 고리원전 2호기 수명 연장의 길을 터준 것이다. ‘수명 연장 원천 반대’로 입장을 정리했던 지난해 2월 1차 회의 때 입장을 사실상 뒤집은 것이다. 대책위는 2020년 10월 제정된 ‘부산시 원자력 안전 조례’에 따라 지난해 1월 발족한 기구다. 부산시 공무원과 시의회·기초단체·시민단체 추천인, 원자력 전문가 등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대책위는 수명 연장 조건의 이행을 촉구하는 건의문도 회의가 끝난 뒤 한달이 넘도록 중앙정부에 제출하지 않고 있다. 1차 회의 뒤 11일 만에 국무조정실, 원자력안전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고리원전 2호기 수명 연장 금지와 차질 없는 원전 해체 추진’을 요구한 건의문을 낸 것과는 다른 행보다. 부산시는 지난달 4일 한국수력원자력이 고리원전 2호기의 수명을 40년에서 10년 더 연장하는 ‘주기적안전성평가보고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한 데 대해서도 여태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부산시 강서구 가덕도 신공항 사전타당성 조사 용역 결과를 발표하면서 공개한 조감도. 육지가 아니라 해상에 활주로를 만드는 것이어서 부산시가 희망하는 2029년보다 6년 늦은 2035년 개항한다. 국토교통부 제공
정권 교체 뒤 달라진 부산시의 행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가덕도 신공항 개항 시기를 2029년에서 2035년으로 늦춘 국토교통부의 사전 타당성 조사 용역 결과에 대해서도 부산시는 침묵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국무회의에서 가덕도 신공항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결정이 내려진 직후 “2030 부산세계박람회의 개최 전까지 가덕도 신공항을 개항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박형준 부산시장의 언급만 있었을 뿐이다. 부·울·경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7명이 회견을 열어 국토부 용역 결과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것과 대조된다. 이들은 회견에서 “박 시장에게 명확한 입장 표명을 요청한다”고 했다.
박철 탈핵부산시민연대 상임대표는 <한겨레>와 만나 “부산시는 시민 안전과 직결된 문제는 정권의 눈치를 보지 말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지난달 26일부터 부산시청 부근에서 고리원전 2호기 수명 연장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