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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AS] ‘교복 빨래’ 할머니 살해 4개월…또다른 비극 막으려면

등록 2022-01-21 04:59수정 2022-01-21 16:46

대구지법 서부지원, 10대 형제들에 징역형 선고
기초생활수급, 가정위탁지원 등 지원 받았지만
조손가정·저소득층 등 다양한 ‘위기 신호’ 얽혀
“위기가구 통합적인 지원 컨트롤타워 필요”
지난 13일 찾은 대구시 서구 비산동 존속살해 혐의 등을 받는 10대 형제가 살던 집 우편함에는 우편물이 가득 쌓여 있었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지난 13일 찾은 대구시 서구 비산동 존속살해 혐의 등을 받는 10대 형제가 살던 집 우편함에는 우편물이 가득 쌓여 있었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 것은 지난해 8월30일이었다. 이날 새벽 대구시 서구 비산동 한 조손가정에서 18살 고3 학생이 함께 살던 할머니(당시 77)를 살해했다. 할아버지(당시 93)도 함께 살해될 뻔했지만 둘째손자(당시 16)의 만류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형제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그로부터 넉달 뒤인 20일, 대구지법 서부지원 형사1부(재판장 김정일)는 존속살해와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형에게 징역 장기 12년~단기 7년을 선고하고 10년 동안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소리가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창을 막는 등 범행을 도운(존속살해방조) 혐의로 함께 기소된 동생에게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죄질이 매우 나쁘지만 불우한 성장 환경과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해 교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형에게 무기징역, 동생에게는 장기 12년~단기 6년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동생은 “(살인을) 방조한 부분이 범행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지 않았고, 할아버지마저 죽이려고 한 것을 만류”했다고 설명했다.

자식을 대신해 손자들을 키워주고 함께 살아온 할머니는 왜 10대 손자에게 희생돼야 했던 것일까. 이들 가족을 돕고 관리해왔던 구청·주민센터를 방문하고 전문가들을 만나 그 이유와 배경, 비슷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한 대책 등을 들어봤다.

여러 지원에도 비극 못 막은 이유

이들 형제는 각각 9살, 7살이던 2012년 부모가 이혼한 뒤 조부모에게 맡겨졌다. 이들 네가족은 방 2칸짜리 29.2㎡(약 9평) 집에 함께 살았다. 두 형제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등 정서행동장애가 있었다. 형은 특수교육 대상자로 선정돼 대구시교육청에서 정신과 치료와 상담 등을 지원받았고, 동생도 학교에서 수시로 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네가족의 삶은 오롯이 할머니에게 달려 있었다. 아흔이 넘은 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이들 가족은 기초생활수급 지원금, 장애수당, 가정위탁지원수당(조손가정) 등 정부로부터 한달에 241만원을 지원받았다. 지난해 4인 가족 최저생계비 292만5774원의 80% 수준이다.

고령에 신체장애까지 있으면서도 틈틈이 폐지를 줍고 정부지원금을 아껴 저축해온 할머니는 평소 스마트폰을 자주 사용하는 손자들을 나무랐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정서행동장애를 앓던 형이 존속살해를 저지르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박원숙 대구 서구청 복지정책과장은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경제적 지원은 계속 있었다. 조손가정의 세대갈등 문제가 컸다고 본다. 할머니는 아이들을 사랑하니까 걱정한다고 했던 말들이 아이들에게는 잔소리로 들린 것이다. 가족 간 갈등이 잠재돼 있다가 폭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부가 “장애가 있는 조부모와 함께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가며 할머니의 잔소리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누적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친할머니를 살해한 혐의 등(존속살해)을 받는 10대 형제가 지난 8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으려고 대구지법 서부지원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친할머니를 살해한 혐의 등(존속살해)을 받는 10대 형제가 지난 8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으려고 대구지법 서부지원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재발방지 대책 얼만큼 준비됐나?

이번 비극은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송파 세모녀 사건’ 등 사례와 결이 다르다. 정부 사회복지망 사각지대에 있지 않았고 절대적인 빈곤에 시달리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예방이 더 어렵다는 점이다.

임성무 전국교직원노조 대구지부장은 “한 학생의 성장에는 복합적인 요소들이 얽혀 있다. 이번 사건은 여러 요인들 가운데 주거 문제가 제일 심각했다고 본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독립적인 공간에서 생활하지 못해 할머니와 갈등이 더 커진 것 같다. 단순히 경제적 지원, 심리적인 지원으로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은재식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코로나19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조손가정, 위기 청소년 문제로 불거졌지만, 코로나로 바깥 활동이 줄면서 가정 내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인, 장애, 조손가정, 위기 청소년, 학교 밖 청소년, 저소득층 등 다양한 위기가 중첩된 현장이었는데 적절한 때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일어난 비극이란 설명이다.

저소득층 조손가정에서 일어난 존속살해 사건에 충격을 받은 지역사회는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22일 배지숙·이진련 대구시의원과 전국교직원노조 대구지부는 대구시의회에서 교육복지안전망 강화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사건을 분석하고 재발방지책을 논의했다. 이들은 “각 영역별 취약계층을 대상화해 지원하다 보니 소득, 교육, 주거, 건강 등 개별 학생에 대한 총체적 접근이 어려웠다”고 분석했다. 대구시교육청도 학교와 구·군·경찰·행정복지센터 등이 모인 위기관리위원회를 매달 한차례 정기적으로 열기로 했다. 지금까지 위기관리위원회는 학생이 자살하거나 자해할 때만 열렸다.

지난해 10월26일 대구 서구의회에서도 토론회가 열려 이주한 서구의원, 허만세 계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진미경 대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협의회장 등이 조손가정 아동·청소년의 정신재활서비스 체계 구축 문제를 논의했다. 이들은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 관리가 사실상 방치돼 있었다”며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정신질환 청소년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구 서구청도 재발방지 대책으로 경찰, 대구교육청 서부지원청, 종합복지관,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청소년상담센터 등과 함께 `저소득층 고난이도 사례관리 협의체’를 구성할 예정이다. 기관별로 사례를 공유해 경제적 어려움, 정서적 문제, 건강 문제 등 복합적인 위기를 가진 가구를 찾아 관리하려는 취지다.

대구시도 뒤늦게 지난 13일 대구 전체 저소득층 조손가정의 학교 생활, 복지서비스 이용현황, 욕구조사 등 실태조사를 하고, 구·군·교육청·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 유관기관과 복지 서비스 연계망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과연 이런 조치들이 제대로 이행되고, 그 결과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비슷한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 임성무 지부장은 “교육복지의 개념을 결핍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성장에 초점을 두고, 다양한 위기 원인을 분석해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여러 분야에 흩어진 지원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면 교육청이 내놓은 대책도 실효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파편화된 각종 복지망을 통합해 위기가구를 관리하는 체계 구축이 기본이라는 주문이다.

남은 이들은?

선고 일주일 전인 지난 13일 찾은 대구 서구 비산동 형제의 집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완연했다. 굳게 닫힌 문 옆 우편물이 한가득 쌓인 우편함이 오랫동안 빈집이라는 것을 알렸다. 이광호 비산2·3동장은 “활기가 돌던 마을에 비극적인 일이 생겨 안타깝다. 동에서도 더 세밀하게 주민들과 관계를 맺고 생활을 살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동장은 홀로 남은 할아버지는 서구 한 요양원에 머물다 다른 지역에 사는 딸이 모셔갔다고 근황을 들려줬다. 서구청 쪽은 집행유예로 풀려난 둘째 손자를 지원할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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