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열 열사 동상이 25일 오후 4시 공개된다. 동상은 지난 7월 완성됐으나, 일부 관련 단체들의 마찰로 비닐에 싸인 채 몇달 동안 방치됐다. 최상원 기자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첫 유혈 민주화운동으로 4·19혁명의 출발점이 된 3·15의거를 되새기는 동상·기념관·오페라 등 기념물 3종이 완성돼, 시민들에게 선뵌다.
경남 창원시는 24일 “3·15의거 기념물 3종을 시민들의 뜻을 모아 어렵게 완성했다. 3·15의거의 역사적 사실을 되돌아보고 민주주의의 참 의미를 알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25일 오후 4시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포동 경남도기념물 제277호 ‘김주열 열사 시신인양지’에선 김주열 열사 동상 제막식이 열린다. 왕광현 작가가 만든 동상은 청동 재질로 받침대를 포함해 5m 높이다. 교복을 입고 오른쪽 가슴에 두손을 얹은 김 열사가 바다에서 솟아오른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동상 둘레에는 파도치는 바다 모습의 6m 길이 부조벽이 설치됐다.
애초 김주열 열사 동상은 지난 7월 완성됐다. 하지만 김주열 열사의 주검이 발견되면서 시위가 다시 격화된 4월11일을 3·15의거와 구분해서 ‘4·11 민주항쟁’이라고 안내판에 표현한 것을 두고, 일부 관련 단체들이 반발했다. 이 때문에 김주열 열사 동상은 파란색 비닐에 싸여 몇달 동안 흉물스럽게 방치돼왔다. 결국 ‘4·11 민주항쟁’이 ‘60년 4월11일’로 바뀌어 석달여 만에 동상을 제막하게 됐다.
동상 제막 이튿날인 26일엔 3·15의거 첫 시위가 일어난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옛 민주당 마산시당 당사 터에서 ‘3·15의거발원지 기념관’이 문을 연다. 창원시는 2018년 옛 당사 터에 들어선 지하 1층, 지상 4층 상가건물을 사들여, 3년에 걸쳐 기념관을 조성했다. 1~3층은 전시실, 3층 일부와 4층은 교육실과 회의실로 사용된다. 지하 1층은 다큐멘터리 <타오르는 민주주의. 마산 3·15의거>를 상영하는 영상실로 꾸며졌다. 기념관 이용은 무료이며, 매주 월요일과 설·추석 당일엔 휴관한다.
다음달 4일과 5일 저녁 7시30분엔 창원시립예술단이 경남 창원시 의창구 용호동 성산아트홀에서 창작오페라 <3·15>를 공연한다. 김주열 열사의 어머니인 고 권찬주(1920~1989년) 여사를 주인공으로 삼아, 3·15의거와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예술적으로 재조명한다. 이호준 작곡, 이상민 대본으로 모두 5막으로 이뤄져 있고, 공연시간은 1시간30분이다. 오페라 연출가인 김성경 감독이 연출을, 공기태 창원시립합창단 예술감독이 총감독과 지휘를 맡았다. 무료로 공연하지만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다음달 2일까지 창원시립예술단 누리집(changwon.go.kr/cwart)에서 예약을 해야 관람할 수 있다.
26일 문을 여는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창원시 제공
창원시 자치행정과 담당자는 “3·15의거의 상징적 인물인 김주열 열사의 주검이 발견된 4월11일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가 논란거리는 될 수 있어도, 옳고 그름으로 나눌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앞으로 관련 단체와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면 현재 임시 봉합 상태인 이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1960년 3월15일 마산(현재 창원)시민들은 부정선거에 항의해 시위를 일으켰다. 첫날 시위에 참여했다가 실종된 김주열(당시 17살)군 주검이 4월11일 눈에 최루탄이 박힌 상태로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 떠오르면서, 시위는 더욱 격화됐다. 4월13일까지 이어진 시위를 경찰은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김주열 열사 등 12명이 숨지고, 250여명이 크게 다쳤다. 마산에서 시작된 시위는 전국으로 퍼지며, 결국 이승만 정권을 몰아낸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이런 과정을 두고 어떤 단체는 3월15일을 1차 의거, 4월11일을 2차 의거로 구분한다. 하지만 3월15일을 3·15의거, 4월11일을 4·11 민주항쟁으로 구분하는 단체도 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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