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부산 금정구 남산동 현대서점 앞에 노란색과 초록색 의자가 나란히 놓였다. 의자 아래엔 ‘남산동은 누구나 주민으로서 삶을 누릴 수 있는 마을입니다’, ‘잠시 쉬어가세요’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남산동 주민이면 누구나 앉아도 된다는 뜻이면서 집을 나와 거리를 헤매는 어르신을 배려한 의자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처럼 남산동 18곳 상점에 설치된 의자들은 경증 인지저하증(치매) 어르신들을 위한 특별한 표시다. 해당 상점의 주인들이 치매 어르신을 위한 도우미인 기억 채움 동행인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휴대전화 앱에 치매 어르신 관련 정보가 담긴 알림이 뜨면, 먼저 찾아가서 집으로 안내하거나 119 등에 도움을 요청한다.
기억 채움 동행인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선 남산동은 65살 이상 노인 비중이 큰 곳이다. 지난달 말 기준 전체 주민 2만9123명 가운데 65살 이상은 6727명(23%)이다. 혼자 사는 치매 어르신들이 길을 헤매다가 자칫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치매 친화적인 마을 만들기’에 나섰다.
이 사업은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주최한 공모에 금정구 노인복지관이 당선되면서 시작됐다. 남산동사무소와 대한노인회 금정구지회, 부산가톨릭대학교, 금샘마을지역아동센터, 금샘아이꿈마당 다함께 돌봄센터, 머드래 행복마을 추진협의회, 금샘마을공동체 등 금정구 8개 기관이 치매 어르신을 돌보기 위해 손을 맞잡았다. 지난해부터 내년까지 확보한 사업비는 6억원이다.
부산 금정구 남산동 현대서점 앞에 설치된 ’기억채움 동행인’ 의자에 주민이 앉아서 쉬고 있다. 금정구 제공
그 결과, 지난달 27일에는 치매 어르신을 위한 돌봄 공모전에서 당선된 영상 작품을 열린 공간에서 상영했다. ‘잠시 쉬어가세요’ 의자 설치에 이어 다음 달에는 주민들이 직접 만든 목도리 200개를 나무에 건다. 관련 앱은 다음달까지 개발할 예정이다. 모두 치매 어르신을 따뜻하게 돌보자는 의미다. 또 치매 어르신들이 밤에 다니기 힘든 4곳에 전구를 밝힌다. 남산동 행정복지센터 쪽은 “중증 치매 어르신들은 요양기관에 입원하지만 초기 치매 어르신들은 대부분 혼자 사신다. 마을공동체가 내 부모를 돌보는 마음으로 치매 어르신들을 보살피려고 힘을 모았다”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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