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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개발, 막개발…해운대 바다 보러 갔다가, 빌딩숲 헤엄칠 판

등록 2021-06-22 04:59수정 2021-06-25 02:31

1980년대부터 고층 콘도·호텔들이 들어서기 시작
101층 레지던스와 85층 아파트까지 허가하더니
해상케이블카와 풍력발전단지까지 들어설 채비
지난 6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왼쪽 흰색 가림막이 입혀진 건물이 철거 중인 해운대그랜드호텔이다. 백사장과 호텔 사이 송림공원에는 해상케이블카 정류장이 추진되고 있다. 고층 건물 3채가 엘시티다. 김광수 기자
지난 6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왼쪽 흰색 가림막이 입혀진 건물이 철거 중인 해운대그랜드호텔이다. 백사장과 호텔 사이 송림공원에는 해상케이블카 정류장이 추진되고 있다. 고층 건물 3채가 엘시티다. 김광수 기자

“백화점 아닐까?”

“호텔일 것 같은데?”

지난 6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을 찾은 20대 여성 두명이 서쪽 백사장에서 직선 100여m 거리 맞은편 건물을 보며 대화를 나눴다. 지하 6층, 지상 22층의 건물은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호텔인 해운대그랜드호텔이다. 출입구로 다가서니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철거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해운대해수욕장 바로 앞에 있는 이 호텔은 재개발에 들어갔다.

길이 1.5㎞에 너비 70~90m인 해운대해수욕장은 1965년 개장했다. 면적이 9만5700㎡에 이르고 평균 수심 1m로 잔잔해, 여름 휴가철엔 하루 수십만명 인파가 몰린다. 한때 교통 불편과 편의시설 부족 등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부산시와 해운대구가 유실된 백사장을 복구하고 22층 미만의 스카이라인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5성급 호텔 6곳을 허가하는 등 ‘부흥’에 나섰다. 탈의실 등 편의시설도 보강했다. 이런 노력 덕에 해운대해수욕장은 여름철이면 해마다 1천만명 이상이 찾는 자타공인 국내 최대 규모 해수욕장이 됐다.

지난 6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고층 건물 3채가 엘시티다. 엘시티 동쪽 앞바다에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된다. 김광수 기자
지난 6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고층 건물 3채가 엘시티다. 엘시티 동쪽 앞바다에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된다. 김광수 기자

해운대그랜드호텔도 고층 재개발 논란

그러던 해운대해수욕장이 고층 건물과 상업시설에 둘러싸여 위협받고 있다.

막개발 첫 테이프는 해운대해수욕장 동쪽 끝 백사장 바로 앞에 자리한 엘시티가 끊었다.

온천센터 예정지였던 이곳엔 상업시설만 지을 수 있었지만, 부산시가 이례적으로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아파트 건립이 가능하도록 용도를 변경해줬다. 해안 쪽 남쪽 건물은 60m, 북쪽 건물은 21m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해안경관 개선 지침도 적용하지 않았다. 특혜 시비가 끊이지 않았지만 부산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사업을 밀어붙였다. 결국 2019년 11월 해운대해수욕장 동쪽 끝 백사장 바로 앞 지상 101층(411m) 규모 생활형 숙박시설(레지던스) 1채와 85층(330m)짜리 아파트 2채로 이뤄진 엘시티가 들어섰다. 국내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해수욕장 바로 앞에 들어선 초고층 아파트는 엘시티가 유일하다.
1970년대 해운대해수욕장. 왼쪽이 송림공원이고 오른쪽이 동백섬이다. 주변에 고층 건물이 없다. 해운대구 제공
1970년대 해운대해수욕장. 왼쪽이 송림공원이고 오른쪽이 동백섬이다. 주변에 고층 건물이 없다. 해운대구 제공

뒤를 이어 1996년 완공한 5성급 해운대그랜드호텔도 재개발에 나서고 있다. 지역 여론은 성수기에 해운대해수욕장 주변 호텔들 객실이 부족한데다, 지역 고용효과가 크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그런데 해운대그랜드호텔 쪽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지난해 2월 해운대그랜드호텔을 인수한 부동산개발회사 ㈜엠디엠플러스는 <한겨레>에 “아직 어떤 시설을 지을 것인지는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는 재개발로 호텔이 레지던스로 바뀔 것이라고 강하게 의심한다.

근거는 있다. 엠디엠플러스가 설계를 맡긴 건축사사무소가 지난해 7월 누리집에 올렸다가 삭제한 조감도다. ㄱ건축사사무소는 조감도에서 ‘모든 객실에서 바다 조망이 가능하고 1만2천여㎡ 터에 지하 7층, 지상 49층, 연면적 21만4262㎡’라고 소개했다. 이 조감도를 입수한 ‘부산경남미래정책’은 “조감도에 따라 지상 49층 레지던스를 짓는다면 2680호실 이상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1970년대 해운대해수욕장. 멀리 보이는 숲이 동백섬이다. 주변에 고층 건물이 없다. 해운대구 제공
1970년대 해운대해수욕장. 멀리 보이는 숲이 동백섬이다. 주변에 고층 건물이 없다. 해운대구 제공

조헌희 부산시 건축정책과장은 “해운대그랜드호텔 터는 일반상업지역이어서 레지던스와 관광호텔, 판매시설 등이 가능하다. 다만 호텔을 주거용으로 사용한다면 단속할 수 있다. 아파트를 지으려면 해당 부지의 용도를 주거지역으로 변경해야 하는데 관광특구지역이어서 용도변경은 힘들다고 본다”고 말했다. 엘시티처럼 아파트 건립은 힘들지만 레지던스는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관심사는 건물 높이다. 현재 해운대그랜드호텔은 용적률(대지 면적에 대한 연면적의 비율)이 434%이고 높이가 91m지만 ㄱ건축사사무소 조감도대로 49층 건물이 들어서면 높이는 150~200m까지 올라간다. 해운대구는 “일반상업지역은 용적률이 1000% 이하여서 해운대그랜드호텔은 50층 이상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부산경남미래정책 쪽은 “특급호텔인 해운대그랜드호텔이 생활형 숙박시설로 바뀌면 코로나19 때문에 어려움에 빠진 특급호텔들이 유사 주거시설 변경을 추진해 해운대구가 ‘관광특구’로서의 지위를 잃을 수 있다”며 “모든 가구가 바다 조망이 가능하도록 배치하면 최근 사회적 재난으로 떠오르는 빌딩풍(고층빌딩 탓에 공기 흐름이 바뀌어 생기는 강한 바람)을 그대로 맞이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부산 남구 용호동 이기대공원~해운대해수욕장 송림공원(4.2㎞)을 오가는 해상케이블카 조감도. ㈜부산블루코스트 제공
부산 남구 용호동 이기대공원~해운대해수욕장 송림공원(4.2㎞)을 오가는 해상케이블카 조감도. ㈜부산블루코스트 제공

해상케이블카·해상풍력발전단지까지?

해운대해수욕장 서쪽 백사장과 해운대그랜드호텔 사이의 송림공원엔 해상케이블카 정류장(6만8597㎡)이 추진되고 있다. 사업시행자인 ㈜부산블루코스트는 지난달 부산시에 송림공원 공영주차장~해운대 앞바다~남구 이기대공원(4.2㎞)을 오가는 케이블카 제안서를 냈다.

제안서가 받아들여지면 남구~해운대구를 잇는 광안대교 주탑(117m)보다 높은 최고 151m 공중에 91대의 케이블카가 연간 365만명의 관광객을 태우고 수시로 오가게 된다. 사업시행자 쪽은 요금은 2만6400원을 제시했고 20년차에 손익분기점이 발생하며 30년 동안 1조8323억원의 생산유발효과와 7410억원의 부가가치유발효과, 1만3603명 취업유발효과가 있다고 제안서에서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은 막개발을 우려한다. 케이블카 동선과 이웃한 마린시티 등 주민들은 “케이블카에서 아파트 안을 바라보면 사생활 침해가 우려되고 차량 흐름이 막히는 해운대해수욕장 주변 도로의 몸살이 예상된다. 해상 스카이라인의 훼손도 불가피하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엘시티에서 동쪽으로 2㎞ 떨어진 청사포에서 1.5㎞가량 떨어진 해운대 앞바다에는 4.3㎿급 풍력발전기 9개가 2024년까지 들어설 예정이다. 풍력발전단지와 해운대해수욕장은 3~4㎞ 이상 거리가 있다. 그러나 청사포 주민들은 “풍력발전단지가 화석연료와 원전을 대체하는 청정에너지라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해양생태계와 바다 경관을 파괴하며 발전기가 가동할 때 생기는 저주파 등이 몸에 미칠 피해가 심각할 것”이라며 사업 철회를 요구한다.

풍력발전단지를 추진하는 ㈜지윈드스카이는 “해상풍력을 먼저 도입한 덴마크에서 해상 생태계를 조사했지만 환경 파괴 징후가 보고되지 않았다. 국내 최초 상업용 해상풍력발전 단지인 제주시 한경면 탐라해상풍력발전소 역시 어족 자원을 황폐화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반박했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엘시티 동쪽 직선 2㎞ 거리의 청사포 앞바다에 들어설 예정인 풍력발전단지 조감도. 지윈드스카이 제공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엘시티 동쪽 직선 2㎞ 거리의 청사포 앞바다에 들어설 예정인 풍력발전단지 조감도. 지윈드스카이 제공

이렇듯 해운대해수욕장 주변에서 동시다발적인 개발이 추진되자, 부산 시민단체들은 자칫 해운대해수욕장 주변이 민간개발업자들의 손을 타 무분별하게 훼손될 것을 걱정한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엘시티를 시작으로 해운대는 민간개발사업자의 수익의 대상지로 전락했다. 훌륭한 자연경관은 시민의 자산인 공공재인데 시민 논의와 합의 없이 민간사업자의 수익 도구로 쓰는 것은 시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부산 도심이 아파트와 초고층 건물로 둘러싸인 데 이어 바다도 하늘도 가리는 삭막한 회색 도시로 남
최근 해운대해수욕장의 모습이다. 앞의 건물 3채가 엘시티이고, 멀리 보이는 숲이 동백섬이다. 해운대구 제공
최근 해운대해수욕장의 모습이다. 앞의 건물 3채가 엘시티이고, 멀리 보이는 숲이 동백섬이다. 해운대구 제공

겨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엘시티 문제로 홍역을 치른 해운대구는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해상케이블카 정류장과 해상풍력발전단지 공유수면 사용 허가를 하지 않고 해운대해수욕장 스카이라인 보존에도 나서겠다는 태도다. 홍순헌 해운대구청장은 “문화재인 동백섬은 대한민국의 자산이므로 보호돼야 한다. 교통 정체와 사생활 침해 등 해운대 주민의 고통을 간과할 수 없고 주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사업은 구청장이 간단하게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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