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 솔동산에서는 새섬과 문섬을 비롯해 왼쪽으로 섶섬이, 오른쪽으로는 범섬이 눈에 들어온다. 자구리 해안에는 올망졸망한 먹돌과 검은 현무암 틈 사이로 게들이 꿈틀꿈틀 기어간다. 서귀포의 아이들은 그런 게들을 잡으며 발가벗고 친구들과 바다에 뛰어들었다.
4·3으로 황폐해지고 6·25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이 궁핍했던 시절인 1951년 서귀포 솔동산에서 피난 생활을 한 화가는 가족과 함께 자구리해안에서 물고기와 게를 잡고, 그런 풍경을 담뱃갑의 은박지에, 도화지에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한국 근대미술의 거장 이중섭(1916~1956)이 서귀포에 머물렀던 기간은 1951년 1월에서 그해 12월까지 채 1년도 되지 않지만, 그의 작품 활동에서는 긴 여운을 남겼다. 제주에서도 솔동산 거리는 이중섭 거리라는 새 이름을 얻었고, 그가 머물렀던 초가집은 ‘이중섭 거주지’로 보존되고 있으며, 이중섭 미술관이 들어섰다.
제주도는 29일 브리핑을 열고 “고 이건희 회장의 유족인 삼성가로부터 이중섭 화가의 대표 작품 12점을 기증받아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에 소장한다”고 밝혔다. 제주도는 이번 기증을 계기로 이중섭미술관의 시설과 인력, 예산을 확대 개편할 계획이다.
기증 작품 가운데는 화가가 가족과 함께 서귀포에 머물며 남겼던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비롯해 ‘해변의 가족’, ‘비둘기와 아이들’,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 ‘아이들과 끈’ 등 유화 6점과 수채화 1점이 포함됐다. 화가가 일본에서 활동하던 시절 연인이었던 이남덕에게 보낸 1940년대 엽서 3점과 서귀포와 관련이 있는 은지화 2점도 있다.
특히 작품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초가집 사이로 눌과 팽나무, 전봇대, 섶섬이 어우러진 제주의 해안 마을 풍경이 담긴 작품은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그가 당시 머물렀던 솔동산의 초가집에서 본 풍경 같은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원희룡 지사는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기증 작품은 이중섭 화가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서귀포 시절 가족과의 추억을 담은 작품으로 의미가 남다르다. 이중섭 화가의 귀한 작품을 기증해주신 삼성가에 감사드리며, 기증 작품을 지역 문화 자산으로 잘 보존하고 활용할 것을 약속한다”고도 말했다.
이중섭이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서귀포시 자구리해안은 문화예술거리로 바뀌었다. 허호준 기자
도는 이번 기증을 계기로 지속적인 작품 확보와 이중섭 미술관 인근 터를 활용해 전시공간을 넓히는 등 시설 확충을 계획하고 있다. 기증 작품들은 이중섭 화가의 기일인 오는 9월6일을 전후로 특별 전시회를 통해 대중들에게 공개한다.
이중섭미술관에는 이번 기증 작품 12점을 포함하면 이중섭 원화 작품이 59점으로 늘어나며, 이중섭 서지 자료 및 유품 등 37점을 포함하면 소장 작품은 총 96점이 된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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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거주지에 전시된 이중섭의 사진. 허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