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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별 피해·행방불명인·연좌제…아직도 규명 못한 4·3 의문들

등록 2021-03-15 04:59수정 2021-03-15 08:20

진상조사분과위 둬 조사내용 심의
여성·아동 피해 등 주제별 조사 필요
4·3세대 고령화·사료 부족 등 한계
“각론적 접근 통해 총체적 실체 규명”
제주 4·3 추념식이 돌아오면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에는 유족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제주 4·3 추념식이 돌아오면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에는 유족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이번 추가 진상조사는 2003년 확정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결론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작업이어야 합니다.”

12일 만난 박찬식 전 제주4·3평화재단 추가진상조사단장은 이렇게 말했다. 진상조사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박 전 단장은 “과거사와 관련해서는 정부 차원의 4·3 진상조사보고서가 최초의 보고서로서 의미가 크다. 이번 추가 진상조사는 말 그대로 최초 보고서의 비어 있는 부분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개별사건 조사가 아닌 집단적 조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2000년 1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제주4·3위원회는 2년가량 조사와 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2003년 10월 진상조사보고서를 확정했다. 진상보고서 발간은 4·3에 대한 시각을 ‘폭동’이나 ‘반란’에서 ‘인권유린’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고, 금기시됐던 기억을 역사의 전면으로 드러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보고서는 결론에서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4·3사건의 전체 모습을 드러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히는 등, 추가 진상조사 필요성은 보고서 확정 이후 지속해서 제기돼왔다. 지난 10일 <한국방송> 제주방송총국 도민 여론조사에서도 ‘4·3특별법 개정안’의 가장 의미 있는 조항이 무엇인지 묻는 말에 ‘희생자에 대한 위자료 형식의 배·보상’(29.2%) 다음으로 ‘추가 진상조사’(23.7%)라고 답한 이들이 많았다.

제주4·3평화재단이 지난해 펴낸 &lt;제주4·3사건 추가진상조사보고서 1&gt;.
제주4·3평화재단이 지난해 펴낸 <제주4·3사건 추가진상조사보고서 1>.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안에서는 제주4·3위원회의 심의·의결 사항 가운데 ‘추가 진상조사’를 추가했다. 여·야 2명씩 국회가 추천하는 위원 4명을 위원회에 증원하고 이들이 포함된 진상조사분과위원회를 둬 추가 진상조사 내용을 심의하도록 했다. 추가 진상조사가 끝나면 결과 보고서를 작성해 발간하고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실질적인 진상조사 업무는 제주4·3평화재단이 맡지만, 추가 진상조사 의결은 분과위와 위원회가 담당하게 된다.

앞서 제주4·3평화재단은 2012년 비상임 추가진상조사단을 출범시켜 5년여 동안 당시 제주도 12개 읍·면 165개 마을(리)별 피해 상황과 집단학살 사건, 수형인 행방불명 등 피해 실태를 조사하고, 지난해 3월 <제주4·3사건 추가진상조사보고서 1>을 펴냈다. 이 작업에 참여했던 조정희 재단 기념사업팀장은 (지난해 보고서는) 재단 자체 보고서라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 통과로 앞으로 발간되는 추가 보고서들은 위원회의 의결을 거치면 정부위원회의 보고서라는 위상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안 희생자들의 위패가 안치된 위패봉안실에는 4·3 추념식 때가 되면 유족들이 가지고 온 제물과 조화들이 쌓인다.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안 희생자들의 위패가 안치된 위패봉안실에는 4·3 추념식 때가 되면 유족들이 가지고 온 제물과 조화들이 쌓인다.

추가 진상조사가 필요한 과제들은 산적해 있다. △마을별 피해 실태 △도내·외 행방불명인 희생자 실태 조사 △군경과 서북청년회 등의 지휘체계 △미군정 등 미국의 역할 규명 등이 대표적이다. 주제별로는 △여성과 아동 피해 실태 △연좌제 피해 △제주 출신 재일동포들의 피해 실태 조사 등도 필요하다. 양정심 재단 조사연구실장은 “조사 사업의 체계화를 위한 분야별 로드맵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재단이 발간한 추가 진상조사보고서를 정부위원회의 보고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추가 조사 등 보완 작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사가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74년 전 일어난 4·3을 경험한 세대가 세상을 뜨거나 고령화됐고, 사건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국내외 사료 발굴 등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단장은 “(정부 차원 진상조사가 있었던) 20여년 전보다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 20여년 동안 발굴된 자료를 다시 검토하고, 유의미한 증언자들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은 “정부의 보고서가 4·3의 전체적 진상 규명과 도민 명예회복을 위한 총론적 접근이었다면, 이번 추가 조사는 각론적 접근을 통해 4·3의 총체적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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