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제주시 관덕정 광장에서 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 국회 통과를 알리는 도민 보고대회가 열렸다. 허호준 기자
“법 아닌 법인 줄 몰랐습니다/ 죄라면/ 좋은 세상 꿈꾸며 속솜하지 않던 죄, 맞습니다/죄명도 기록도 모른 사람들/ 풀잎처럼 이 산천 저 산천 이송되었습니다/ 법 아닌 법 앞에서/…눈도 입도 다물던 사람들, 이제 한번/ 묻습니다. 법 앞에서/ 거기 꽃 피었습니까/ 여기 꽃 피젠 햄수다.“
허영선(시인) 제주4·3연구소장이 ‘법 앞에서’를 낭송해나가자 자리에 앉았던 아흔을 바라보는 할아버지도, 70대 아주머니도, 20대의 청년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5일 오전 73년 전 제주4·3의 도화선이 된 제28주년 3·1절 기념대회의 무대였던 제주시 관덕정 광장에서 ‘제주4·3특별법 개정 도민 보고대회’가 열렸다.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한 제주4·3특별법 개정 쟁취를 위한 공동행동이 주최하고, 제주4·3유족회가 주관한 이날 보고대회는 지난달 26일 있었던 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축하하고, 도민사회에 이를 알리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지난 4일부터 이날 새벽까지 제주도에 몰아치던 비바람도 보고대회를 앞두고 멈춰 새봄을 알리는 듯 따뜻한 날씨를 보였다. 이날 보고대회에는 오임종 4·3유족회장을 비롯한 유족과 원희룡 제주지사, 좌남수 제주도의장, 이석문 제주도교육감,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 정연순 4·3범국민위원회 이사장 등 4·3특별법 전면 개정에 힘을 모은 이들이 참여했다.
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 도민 보고대회 참가자들이 5일 오전 제주시 관덕정 광장에 마련된 무대에서 만세를 외치고 있다. 제주도 제공
오 회장은 감사 인사를 통해 “4·3의 도화선이 된 관덕정 자리에서 제주에 새 봄을 알리게 돼 기쁘다. 모두가 노력했기에 가능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4·3 당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해원해야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오 회장은 도민 앞에 큰 절을 올렸다.
4·3 당시인 2살 때 목포형무소에 있던 할아버지와 집에 있다가 끌려간 아버지가 행방불명되고, 남동생은 숨진 유족 강춘희 4·3유족회 부회장이 자신의 4·3 경험담을 이야기하자 장내는 다시 한 번 숙연해졌다.
원희룡 지사는 축사를 통해 “정부가 배·보상 산정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용역을 진행 중이다. 4·3 피해자와 유족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4·3으로 아픈 제주에 진정한 봄이 오는 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은 각계발언 기회를 통해 “4·3특별법 제정 당시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전부 개정도 기적 같은 일이다. 특히 여야 합의로 통과돼 기쁘다. 4·3 영령들이 도와줬다고 생각한다. 4·3 문제 해결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과거사 해결의 모델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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