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홍콩의 란딩인터내셔널은 회사 누리집의 ‘내부정보 공고’에 “회사 경영진이 1월4일 제주도에 보관 중이던 회사 소유 한화 약 145억6천만원(홍콩달러 1억380만달러)을 분실한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회사는 공고를 통해 “경영진은 현재 자금 담당자와 연락을 취할 수 없다. 회사는 즉시 (한국) 경찰에 분실신고를 했고, 현재 조사 중이다. 이사회는 현재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조사하고 있으며 추후 발표할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제주신화월드 랜딩카지노(람정엔터테인먼트)에 보관돼 있던 현금 145억여원이 사라지자 회사 쪽이 홍콩 ‘증권상장규칙’에 따라 주주들에게 분실사건을 공개한 것이다. 제주신화월드 쪽은 홍콩에서 회사 쪽이 주주들에게 공지하는 시기에 맞춰 서귀포경찰서에 신고했고, 이 사건은 제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로 넘겨져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막대한 액수의 현금 때문에 이 자금이 무슨 용도로 보관돼 있었고, 어떻게 사라졌는지 관심을 끌고 있다.
왜 홍콩 본사는 제주도 현지법인도 모르게 이 돈을 제주에 있는 카지노에 보관했을까. 막대한 액수의 현금의 용도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홍콩 란딩인터내셔널은 2018년 3월 제주신화월드 내 랜딩카지노 개장 당시 국내 은행에서 초기 운영자금 등으로 300억원을 찾아 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분실된 돈이 당시 찾아 보관한 돈의 일부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신화월드 쪽은 부인했다.
제주신화월드는 양즈후이 회장이 2017년 2월 제주대학교에 인재양성발전기금으로 10억원을 전달하는가 하면, 개장 무렵인 2018년 5월 곶자왈 매입자금으로 곶자왈공유화재단에 100억원을 기탁하는 등 크고 작은 기부를 하기도 했다. 제주신화월드 관계자는 “개장 당시 운영자금으로 현금을 보관했을 수 있지만, 이번 분실된 돈은 300억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랜딩카지노를 운영하는 람정엔터테인먼트코리아와 람정제주개발은 지난 8일 입장문을 내고 “사라진 자금은 외국인 전용 카지노인 람정엔터테인먼트코리아의 자금이 아니며, 리조트 부분 운영사인 람정제주개발의 자금도 아님을 명확히 밝힌다. 따라서 제주신화월드 운영과 재정에는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제주신화월드 리조트나 카지노 자금이 아니어서 카지노 운영과는 관련이 없으며, 홍콩의 본사인 란딩인터내셔널이 맡겨놓은 자금이라는 것이다.
홍콩의 란딩인터내셔널 이사회 의장은 양즈후이다. 2006년 홍콩에 리조트 개발회사인 란딩인터내셔널을 설립한 양즈후이는 2013년 신화월드 리조트 조성을 위해 람정제주개발과 람정엔터테인먼트코리아를 설립했다. 그 뒤 홍콩과 제주도를 오가며 1조8천억여원을 들여 2018년 3월 제주신화월드 복합리조트를 건설했다.
랜딩카지노는 2018년 3월 개장 이후 그해 연말까지 3800억여원의 매출액을 기록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같은 기간 제주도내 전체 8개 카지노 매출액 5112억원의 74%를 차지했다. 그러나 양즈후이가 2018년 8월 캄보디아 공항에서 중국 당국에 체포돼 3개월여 구금됐다가 풀려나면서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했지만 그 뒤 카지노업이 비틀거렸다. 코로나19의 영향이 크지만 지난해 10월에는 17억원, 11월에는 31억원의 매출실적을 내는 데 그치기도 했다.
경찰과 회사 쪽은 카지노의 자금 담당 책임자였던 말레이시아 국적의 여성 ㄱ(55)씨를 주목하고 있다. 이 여성은 홍콩 란딩인터내셔설에서 2018년 3월 임원급 인사로 파견된 인물로, 양즈후이 의장과 직접 소통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신화월드 관계자는 “혼자 파견됐으며, 자금 관리인이나 책임자 정도로 알고 있었을 뿐 구체적으로 이 분이 하는 일은 모른다. 우리와는 접촉이 없었다”고 말했다. 회사 쪽은 공시에서 ㄱ씨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라진 돈은 모두 현찰로, 5만원권일 경우 29만1200장으로 300㎏에 달한다. 비자금 사건에서 자주 등장했던 사과상자(20kg)에 담아도 15개의 상자가 필요할 정도이다. ㄱ씨 단독으로 처리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돈은 일반 카지노 이용자들의 환전을 위한 금고가 아니라 다른 사무실 금고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지노 내외부에는 보안요원과 폐회로텔레비전 1100개가 설치돼 감시의 눈을 피해 이처럼 많은 액수의 돈 상자를 옮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 돈이 유출됐거나 복수의 인물이 돈을 옮기는 데 필요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경찰은 카지노 자금 담당 책임자였던 ㄱ씨의 행방을 추적한 결과 ㄱ씨가 지난해 12월 말 출국한 뒤 제주에 돌아오지 않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금고가 있는 사무실 주변의 폐회로텔레비전을 조사했지만, 자금이 빼돌려지는 부분을 확인하지 못했다. 경찰은 “감시 카메라의 메모리 용량으로 인해 한 달 정도 지나면 그 이전의 영상이 자동삭제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한 달 이전 녹화됐다가 지워진 영상을 복원하면 자금 이동 등 ㄱ씨의 행적이 드러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라진 돈이 외국으로 나갔는지, 제주도의 다른 곳에 있는지도 관심사다. 일부에서는 액수가 많은 만큼 단기간에 유출됐다기보다는 장기간에 걸쳐 유출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현금 더미는 공항 화물검색대에서 적발될 가능성이 크고, 미화 1만달러(한화 1087만원)가 넘으면 세관에 신고해야 하기 때문에 외국 반출이 쉽지 않아 제주도에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게 주변의 말이다.
랜딩카지노 노동조합인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제주관광서비스노조 LEK지부는 “이번 사건은 랜딩카지노의 대외 신인도에 막대한 타격을 안겨주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최고운영책임자는 진상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조사 경과와 내용, 관리 감독 책임자로서 공식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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