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열린 4·3 수형 생존자 재심 청구소송 재판에 참석한 4·3 수형 생존자들. 허호준 기자.
제주4·3 당시 군법회의(군사재판)와 일반재판을 받고 수형 생활을 한 이른바 ‘4·3 수형 생존자’들에게 검찰이 무죄를 구형했다.
제주지방검찰청은 16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심리로 열린 4·3 수형 생존자 9명에 대한 재심사건 첫 공판에서 모두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이날 재판은 재심 개시 결정 이후 처음 열린 공판이었지만 재판부는 고령의 재심청구인과 유족들의 상황을 고려해 사전에 검찰과 변호인의 최종 의견을 제출받아 결심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법정에 선 피고인은 군사재판을 받고 내란실행이나 국방경비법 위반죄 등으로 수형 생활을 한 김묘생(92) 김영숙(90) 김정추(89) 송순희(95) 할머니와 장병식(90) 할아버지, 고 송석진(1926년생) 할아버지와 고 변연옥(1929년생) 할머니다. 또 1948년 11월 일반재판을 받고 10개월 동안 목포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한 김두황(92·서귀포시 성산읍) 할아버지도 포함됐다. 고 송 할아버지와 변 할머니는 지난 4월과 7월 작고해 자녀들이 참석했다.
이날 검찰은 김두황 할아버지의 사례에 대해 “제주4·3과 관련해 일반재판을 받은 최초의 재심이라는 의의가 있다. 판결문이 존재하지만 그 외 별다른 소송기록이 없어 공소사실을 입증할 자료가 없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검찰은 또 나머지 군사재판을 받은 피고인들에 대해서도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소 기각이 가능하겠지만, 여순사건과 보도연맹사건 재심 판결에서 공소사실 특정 기준을 완화한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들의 방어권 보장에 별다른 영향이 없다”며 ‘공소 기각’이 아닌 무죄를 구형했다.
검찰은 이날 이례적으로 모두 진술에서 이 소송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4·3의 역사적 의미와 제주도민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많이 배우고 느꼈다. 제주도 인구의 10%인 2만5천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2만여채의 가옥이 불에 탔다. 엄청난 비극이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됐다. 동굴에서 질식사한 코흘리개와 노인들, 수십년간 가족을 잊고 숨죽여 흐느껴왔을 수많은 가족의 눈물이 뒤범벅된 땅이 제주도”라고 말했다.
검찰은 “4·3의 여러 이념적 논란을 떠나 해방 후 혼란 속에서 유명을 달리한 도민들의 아픔은 누구도 부정 못 한다. 이런 아픔을 함께하고 최대한 진실을 밝혀보고자 엄중하게 재판에 임해왔다. 평생 상처와 눈물로 버텨온 아픔이 치유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018년 10월 열린 제주4·3 수형 생존자 재심청구소송에서는 재판 기록이 없어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못한 만큼 공소 제기 자체가 무효라며 공소 기각을 재판부에 요구한 바 있다.
이어 피고인들의 최후 진술이 이어졌다. 부산에서 온 김정추씨는 “높으신 판·검사님, 대단히 감사하다. 70여년 동안 가슴에 품고 전전긍긍하면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했다. 나는 내가 지금도 뭣 때문에 누명을 쓰고 살았는지 모른다. 너무나 억울하고 한이 깊다. 너무나 부끄러워서 부산에서는 내가 제주도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죄인처럼 살았다”며 울먹였다. 선고는 다음 달 7일 오전 9시 40분이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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