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당시 수형 생활을 한 이른바 ‘4·3수형인’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군사재판의 무효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된 가운데 ‘일괄 재심’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는 19일 오전 4·3 당시 행방불명 수형인들 유족 문정어(85)씨 등 17명이 출석한 가운데 재심 청구 소송 심리를 진행했다.
현재 제주지법에는 4·3 당시 수형 생활을 하다 행방불명된 유족들의 재심 청구소송이 잇따라 25건에 362명이 재심을 청구한 상태이다. 앞서 지난해 1월에는 수형 생존자 18명이 제주지법의 공소 기각 결정으로 사실상 무죄 취지의 선고를 받았다.
제주4·3 당시 군사재판을 받고 수형 생활을 한 제주도민은 <수형인명부>상 최소한 2530여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상당수가 한국전쟁 발발 직후 행방불명됐다.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지난 7월 공동발의한 제주4·3특별법 개정안에는 군사재판의 무효화가 들어있다. 당시 군사재판의 무효화를 통해 4·3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자는 취지로, 재심을 청구할 유족이 없는 경우도 많고, 재심 절차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특별법 개정안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정부가 군사재판의 전면 무효화에 난색을 보이는 대신 ‘일괄 재심’을 통한 대안을 내놓으면서 관련 논의가 물살을 타고 있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7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오 의원의 4·3 수형인들에 대한 명예회복 조치 등과 관련해 정부의 입장을 묻자 “재판을 전부 무효로 하거나 없었던 것으로 하는 것은 삼권분립상 어렵다”며 대안으로 검사나 제주4·3위원회에서 재심을 청구하는 방안 등을 포함해 유연하게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오 의원은 지난 17일 4·3희생자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와 간담회를 열고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명시한 특별재심 조항을 원용하고, 유족이 없는 경우 검사가 일괄 재심을 청구하거나 제주4·3위원회가 일괄적으로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4·3특별법 개정안에 포함하는 방안을 설명했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재판부는 4·3 당시 적법한 조사 절차나 공소제기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하고 공소 기각 판결을 내렸다. 삼권분립에 입각한 사법권의 존중을 내세워 입법적 해결을 위험시하는 것은 안 된다”며 “’일괄 재심’이 차선책이 되려면 재심 청구권의 제주4·3위원회 부여와 재심 청구 의무화 등 법률 조문으로 절차를 공식화하고 완전히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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