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길가에 제2공항을 반대하는 펼침막들이 내걸려 있다.
국토해양부가 2015년 11월10일 전격적으로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를 제2공항 건설 예정지로 발표한 뒤 5년째 공항 건설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공항 예정지와 인근에서 농사를 짓거나 살아온 주민들은 “마을이 없어진다. 어디 가서 농사지으란 말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반대 단체는 2공항 건설은 제주의 자연생태계를 훼손한다며 반발 강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국토부는 계획대로 2025년까지 2공항 건설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6일 제주 성산포 부근 난고로를 따라가다 샛길로 접어들자 푸른 하늘 아래 녹색의 향연이 펼쳐졌다. 제주도 중산간의 싱그러운 신록이 그대로 드러났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 제주 제2공항 건설 예정지다.
길옆 옴탕밭(평지보다 낮은 지대에 있는 밭)으로 내려가자 동행한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가 밭도랑으로 안내하며 조그만 구멍을 가리켰다. 지름 30~40㎝쯤 되는 구멍이 나 있었다. 제주사람들이 말하는 ‘숨골’이다. 화산섬 제주는 비가 내리면 바위가 갈라진 틈을 따라 빗물이 그대로 스며들어 지하수를 형성한다.
숨골은 이런 제주의 생명수나 다름없는 지하수 함양 통로다. 밭도랑 반대편으로 가자 이번에는 구멍이 없는 숨골이 나타났다. 국토교통부가 2공항 사업 예정지에서 찾아낸 숨골은 8곳이다. 그러나 지역주민과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도민회의)가 찾아낸 숨골은 지난해 61곳에 이어 지난달 28일 75곳을 더 발견해 모두 136곳이나 된다. 사업 예정지 인근에서는 동굴도 찾아냈다. 홍 대표는 “국토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다는 증거다. 숨골은 지하수 보전 1등급에 해당하는 투수성 지질로 이 지역의 지하수 자원을 모두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 제2공항 건설사업 어디까지 왔나
국토부는 2025년까지 성산읍 난산·수산·온평·신산리 등 일대 545만6437㎡의 터에 총사업비 5조1278억원을 들여 활주로(길이 3200m, 너비 45m) 1개와 평행유도로 2본, 계류장 44곳과 여객터미널(16만7380㎡) 등을 건설할 계획이다. 국토부가 이 지역을 건설 예정지로 발표한 것은 2015년 11월이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가 6일 성산읍 제주 제2공항 건설 예정지 내에서 발견된 숨골을 가리키고 있다.
지난해 6월에 나온 국토부의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 용역 보고서를 보면 2공항은 현 제주공항의 국내선 50%를 분담하는 것으로 돼 있다. 기본방향은 1단계(2035년, 개항 후 10년) 연 1690만명, 2단계(2055년, 개항 후 30년) 연 1898만명(사람 수 기준 948만명)을 수용하는 것으로 돼 있다.
국토부는 지난해 이를 발표하면서 기본계획 용역을 바탕으로 그해 10월 기본계획을 고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늦어지고 있다. 국토부가 지난해 9월 환경부에 낸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두차례나 보완 요청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검토 결과 2공항 일대가 ‘조류 충돌’ 위험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국토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국토부는 올해 1월부터 이달까지 5개월 동안 겨울과 봄철의 조류 상황을 추가 조사해 새달 중순께 환경부에 재보완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2공항 기본계획을 고시하고 설계 발주를 하려면 환경부의 동의가 필요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환경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계획대로 추진은 불가능하고 전반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부동의할 경우에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 갈수록 반대 거세져…나뉘는 여론
2공항 건설 예정지가 발표된 2015년 11월10일 원희룡 제주지사는 성산읍사무소에서 연 설명회에서 “설계·시공 등을 최소한 6개월~1년 앞당길 수 있다. 지역 내에서 왈가왈부하는 것 때문에 지체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며 속도전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이곳 주민들은 2공항을 보는 시각이 조금씩 다르다. 직접 농지가 수용되거나 소음 피해를 볼 예정지 주변 주민 대다수는 반대한다. 300여가구 1천여명이 사는 수산1리는 2공항 입지가 확정된 다음달인 2015년 12월 마을총회를 열어 사실상 만장일치로 반대 결의를 했다. 주민들은 주로 감귤과 무, 감자, 당근 재배 등 복합영농을 한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가 6일 2공항 건설 예정지 인근에서 발견된 칠낭궤(동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7일 오후 만난 김문식(52) 이장은 “우리 마을은 공항이 건설되면 항공기 바퀴가 보일 정도로 지나가는 곳에 있어 사실상 마을이 결딴나는데 누가 반대하지 않겠나. 공항 건설을 균형발전 기회라고 하지만 도시화하면 농사짓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느냐. 국책사업 추진을 이유로 이 지역을 제2의 강정마을로 만들 수 없다. 강정마을처럼 갈등이 생길까 봐 조심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반대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마을 곳곳에는 2공항 건설 반대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다. 도민회의도 주민들의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성산일출봉 주변에서 편의점을 하는 황아무개(41)씨는 “관광객이 더 들어오니까 발전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삶이 더 중요하다”며 처음부터 반대 입장이라고 했다. 황씨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무비자 지역인 제주도가 감염병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 반대하게 됐다. 제주도가 제주도다워야 한다”고 했다.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황씨의 친구 김아무개씨도 “공항이 들어서면 장사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는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을 거라고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도 “건설 예정지 주변에 사는 친구들 입장에서는 집도 땅도 내놔야 하는데 얼마 되지 않는 보상금을 가지고 토지를 사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겠나. 처음부터 다시 일궈야 하는데”라고 말하고는 공항 건설은 ‘반은 찬성, 반은 반대’라며 웃었다.
■ 공론조사 놓고도 의견 엇갈려
5년째 2공항 건설 반대투쟁을 벌이는 도민회의는 공론화 절차를 거쳐 제주도민의 결정에 맡기자고 주장한다. 도민회의는 그동안 2공항 입지가 철새도래지 등 조류 충돌의 위험성과 동굴 조사 부실, 안개일수 오류 등 입지 선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해왔다. 도민회의는 “국토부와 제주도의 2공항 건설사업은 제주도의 환경을 크게 훼손할 것”이라며 “현 제주공항의 인프라 확충 등으로 여객 수요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 도민의견 수렴을 거쳐 도출된 결과에 따라 2공항 갈등이 마무리돼야 한다”고 했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주변 도로에 2공항을 반대하는 각종 펼침막과 깃발들이 내걸려 있다.
제주도의회는 도민 청원에 따라 지난해 11월 제2공항 건설 갈등 해소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이달 14일까지 6개월 동안 운영하기로 했다가 연말까지로 운영 기간을 연장했다. 특위는 7~8월 2공항 건설 관련 쟁점 해소를 위한 연속 토론회를 연 뒤 9~10월 도민 의견 수렴을 거쳐 12월까지 결과보고서를 채택할 예정이다. 제주도에 공론화를 요구할지 주목된다.
그러나 국토부와 제주도는 반대 주민과 단체 등의 요구에 따라 2018년 입지 선정 타당성 재조사 용역과 검토위원회의 재검증까지 거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원 지사는 도의회에서 “2공항은 국책사업으로 제주도의 숙의형 공론조사 대상이 아니다”라거나 “현 제주공항 확장으로 미래 수요를 확보하는 방안이 기술적, 경제적으로 가능하지 않은데 그것을 공론화로 묻는 것은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는 등 여러 차례 공론화 반대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박찬식 도민회의 상황실장은 “오랜 시간 치열한 논쟁이 전개됐고, 검토위를 구성해 격론을 벌였지만 국토부나 제주도는 2공항 필요성이나 입지 타당성 등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지 못했다.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중앙정부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주장은 개발독재시대의 사고와 관행이다. 국토부와 제주도는 도의회의 공론화 과정을 존중해야 한다. 최종 결정은 도민의 몫이다”라고 강조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