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 싱그레 가게’(나무 심으러 가자) 프로젝트를 기획한 제주 출신 고길천 작가. 사진 허호준 기자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공존해야 합니다. 나무가 환경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삼나무만해도 제주에서 감귤원의 방풍림으로 쓰이는 등 우리의 삶을 위해 필요했어요. 이제는 도로를 확장하겠다고 이를 베어내는 것은 우리의 이기심이자 잘못된 정책입니다.”
환경파괴 논란으로 전국의 관심을 끈 제주 비자림로 숲에서 ‘낭 싱그레 가게’(나무 심으러 가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고길천(64) 작가의 말이다. 시민예술행동 ‘나무 심는 사람들’은 지난 25일 오후 확장 공사가 예정된 비자림로 숲에서 기자회견과 나무심기 행사 등을 열었다. 오는 6월에는 작가들과 나무를 심은 시민들이 함께 하는 영상 보고회와 전시회를 제주시내 아트스페이스·씨에서 열 예정이다.
고 작가는 독일의 작가 요셉 보이스가 1982년 ‘카셀 도큐멘타’를 통해 ’7천 그루의 떡갈나무 심기’ 프로젝트를 진행해 카셀 도심의 기념물이 됐다는 것에 착안해 ‘낭 싱그레 가게’를 제안·기획했다. 그는 최근 2개월 동안 비가 내리는 날만 빼고 거의 매일 비자림로 숲을 찾아 작업했다. 확장공사를 위해 잘라낸 삼나무 100그루의 그루터기를 흑연 덩어리로 문지르는 프로타주기법으로 제작한 작품 100점을 나무를 심은 사람들에게 증정할 계획이다.
고 작가는 “이번 행사는 나무 심는 행사를 통해 다른 생명체에 대한 존중을 경험하고, 인간의 이기심으로 잘린 나무숲을 복원하는데 의의가 있다”며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신념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고 당장의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긍정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난개발 제주의 환경에 주목한 고 작가의 작품 활동은 4·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서울에서 ’인간성 상실’을 주제로 판화작업에 몰두하던 그는 90년대초 고향 제주로 돌아와 4·3을 주제로 작업을 해왔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공사 현장에서 예술행동을 처음 목격하고 참여하기 시작해 제주 강정 해군기지 반대투쟁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제주와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2011년과 12년에는 미국의 진보 석학 놈 촘스키 교수를 만나 해군기지 반대투쟁 지지를 끌어내기도 했다.
“비자림로 숲에는 삼나무는 물론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 동식물 등 여러 생명체가 함께 서식하는데 나무가 잘려나가면서 같이 사라져 가고 있어요. 4·3 작업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듯이 비자림로 숲 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런 생명의 소중함을 돌아보고, 삶에 대한 긍정과 미래에 대한 신뢰를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그가 회화와 판화, 설치미술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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