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유족 모자가 2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 각명비에 새겨진 희생자 이름을 찾고 있다.
“뼈 한조각 찾지 못하고 돌아가신 날도 모르는 우리들의 억울함을 누가 알겠습니까?”
지난해 6월3일 제주4·3 당시 행방불명된 아버지(김경행)의 군사재판 무효화를 주장하며 재심을 청구한 김필문(75·제주시 영평동)씨는 긴 한숨부터 쉬었다. 지난 3일 <한겨레>와 만난 김씨는 “10개월이 됐지만 법원에서 재판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답답해했다. 김씨 부친은 김씨가 세살이었던 1948년 12월8일 군사재판에서 징역 15년형을 받고 대구형무소로 간 뒤 소식이 끊겼다. 김씨는 아버지가 왜, 어떻게 잡혀갔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로부터 듣기로는 가족이 살던 중산간 마을이 소개돼 시내로 내려왔으며, 그곳에서 경찰에 끌려간 뒤 전기고문 등을 받고 주정공장에 있다가 대구형무소로 간 뒤 소식이 끊겼다는 게 전부다.
김씨는 “형무소에서 살다 나온 사람들은 지난해 무죄 판결을 받고 국가배상까지 받았지만, 아버님처럼 돌아오지 못한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당시 민간인들을 상대로 군사재판이 가능한지, 제대로 재판이 열렸는지 알려달라는 것이다. 아버님의 명예회복이 우선이다”라며 재심 청구 이유를 밝혔다.
김씨처럼 가족이나 자신의 무고함을 밝혀달라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한 이는 379명에 이른다. 하지만 지난 2017년 4월 재심을 청구한 수형 생존자 18명이 지난해 1월 무죄 판결과 국가배상을 받았을 뿐이다.
제주4·3 수형 생존자들이 지난해 1월 재심 청구 소송 끝에 사실상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우리는 이제 죄 없는 사람’이라는 펼침막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제주4·3 희생자 국가 배·보상 문제는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4월1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희생자로 결정했음에도 배·보상이 이뤄지지 않은 관련법은 4·3특별법에 의한 희생자밖에 없다”(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회정의 차원에서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배·보상해야 한다”(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발언이 나온 게 전부다.
4·3 유족들과 관련 단체들은 희생자와 유족 배·보상과 잇따르는 재심 청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4·3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4·3의 완전한 해결’을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하고, 4·3 추념식 때마다 정치권이 4·3특별법 개정을 약속했지만 실제 변화는 없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4·3특별법 개정안은 5건인데,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다뤄진 것은 2018년 9월과 지난해 4월 두차례가 전부다.
제주4·3유족회가 지난해 10월 국회 앞에서 삭발투쟁 등을 하며 4·3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를 호소하고 있다. 제주4·3유족회 제공
지난해 4월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윤종인 행정안전부 차관은 군사재판 무효화와 관련해 “법무부는 사법부의 권한 및 법적 안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고, 재심 개시 결정 사유를 넓혀 재판 절차를 통한 해결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행안부는 사법부 권한 침해 우려와 명예회복의 필요성을 비교 형량해서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라며 부정적 견해를 나타냈다. 배·보상 문제와 관련해서는 “재정당국과 이야기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제주4·3평화재단이 펴낸 <추가진상조사보고서>는 “4·3특별법 제정의 1단계가 ‘진실규명, 명예회복, 국가사과, 국가추념’이라면 이제는 국가배상과 정의 실천으로 피해회복의 2단계로 나가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송승문 제주4·3유족회장은 “4·3 추념식 기간만 되면 정치권과 정부가 4·3 문제 해결에 힘을 쏟겠다고 약속하지만 더는 진척되지 않는다. 정부와 정치권이 의지를 갖고 있다면 4·3특별법 개정안을 이번 20대 국회에서 통과시켜달라”고 요구했다.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은 “제주4·3은 과거사청산운동의 모범으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여러 단계를 밟아왔다. 4·3 해결을 위한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 구호가 아닌 행동으로 실현될 때 제주도민들의 화해와 상생, 포용운동도 빛을 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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