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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제주

해녀와 남방큰돌고래, 더 오래 공존하기 위하여

등록 2020-04-01 15:57수정 2020-04-01 16:28

제주 해녀 물질할 때 돌고래 접근 회피 첫 실험
사람 해치지 않지만 움직일 때 해녀들 다치기도
“해녀도 살고 돌고래도 사는 방안 찾는 시도”
1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바닷가에서 남방큰돌고래들이 무리를 이뤄 유영하는 가운데 새끼 돌고래(왼쪽)도 눈에 띄었다.
1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바닷가에서 남방큰돌고래들이 무리를 이뤄 유영하는 가운데 새끼 돌고래(왼쪽)도 눈에 띄었다.

1일 오전 10시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바닷가. 파도가 부서지는 현무암 바위 앞으로 5~6마리의 남방큰돌고래가 힘차게 유영하며 지나갔다. 아기 돌고래도 어미 돌고래를 따라갔다. 조금 있더니 반대편에서 다시 돌고래떼들이 자맥질하며 지나갔다. 남방큰돌고래를 지키는 모임인 핫핑크돌핀스의 조약골 공동대표가 “바닷속에서 유영하며 가는 무리까지 합치면 10여마리는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날 무릉리 바닷가에서는 이틀째 해녀와 돌고래의 공존을 위한 자그마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모슬포수협, 무릉리 어촌계 해녀, 핫핑크돌핀스가 참여한 이 실험은 해녀들이 물질할 때 돌고래들이 해녀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날은 파도가 거세 물에 잠수했던 해녀들이 실험을 중단했다.

지난달 31일 실시된 실험은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담는 테왁 망사리에 장치를 설치한 뒤 음파를 이용해 돌고래 접근을 회피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무릉리 해녀 11명이 참여했다.

물질 경력 70여년의 한 해녀는 “10여 년 전부터 돌고래들이 무릉리 바닷가에 살다시피 하고 있다. 인근 마을 해녀는 돌고래 꼬리에 물질하다 다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해녀는 “물질을 하는데 돌고래가 접근하더니 광어를 입에 물고 유유히 사라졌다. 직접 눈으로 보니 순간적으로 두려운 느낌이 들었다”고 기억했다.

무릉리어촌계 해녀들이 31일 돌고래 접근을 회피하기 위한 장치를 테왁 망사리에 설치하고 물질에 나서고 있다.
무릉리어촌계 해녀들이 31일 돌고래 접근을 회피하기 위한 장치를 테왁 망사리에 설치하고 물질에 나서고 있다.

물질 경력 40여년인 문연심(68·무릉리 어촌계장) 해녀는 “돌고래가 사람을 해치지는 않지만 물질을 하다 보면 주위를 유유히 돌 때도 있다. 어떤 때는 물질을 하다 머리를 들면 머리 위로 삭 지나가 오싹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먼바다에 소라 등 물건이 있어도 무서워서 나가지 못했다. 해녀들도 살고 돌고래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해녀들은 지난해 5월부터 “해녀가 우선이냐, 돌고래가 우선이냐. 돌고래 때문에 물질을 하지 못하겠다”며 모슬포수협과 행정기관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해녀들은 인근 신도리 해안에 있는 핫핑크돌핀스 관계자들을 찾아가 항의하기도 했다.

이에 대정읍 동일리~무릉리~신도리 바다를 돌고래보호구역으로 지정하자는 운동을 벌이는 핫핑크돌핀스는 ‘해녀와 돌고래의 공존’을 놓고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번 실험은 모슬포수협을 통해 전달받은 돌고래 접근 차단 장치인 ‘핑어’ 2개를 테왁 망사리에 설치해 물질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돌고래가 보이지 않아 소라 등 물건이 많은 먼바다까지 나가 물질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생산한 이 장치는 음파를 내보내 돌고래의 접근을 막는 장비다. 반지름 300여m까지 접근을 막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에서는 어선 그물에 돌고래가 걸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그물이나 낚시에 설치한다.

무릉리어촌계 해녀가 물질을 끝낸 뒤 잠수복을 정리하고 있다.
무릉리어촌계 해녀가 물질을 끝낸 뒤 잠수복을 정리하고 있다.

국내에서 해녀와 돌고래의 공존을 위해 이런 실험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무릉리를 중심으로 한 이 지역은 사실상 남방큰돌고래의 서식지나 다름없다.

조약골 대표는 “20여마리가 일상적으로 보이고, 먹이가 좋거나 물때가 맞으면 많게는 70~80여마리가 출현할 때도 있다. 대정읍 해안가 일대가 돌고래에게는 스트레스를 받을 조건이 없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새끼 돌고래들이 어미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데, 이 일대가 남방큰돌고래의 주요 번식지라는 의미로, 생태적 중요성이 크다. 해녀들이 안전하게 물질할 수 있고 돌고래들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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