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경이 4일 새벽 제주시 우도 먼바다에서 불이 난 어선을 진화하고 있다. 제주해경 제공
“불이야!“
4일 새벽 3시18분께 제주 우도 남동쪽 74㎞ 바다에서 갈치잡이 조업에 나섰던 서귀포선적 연승어선 307해양호(29t)에서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잠을 자던 갑판장 김아무개(47)씨는 순간적으로 일어나 고함을 지르며 조타실에서 자고 있던 선장 김아무개(59)씨를 깨웠다. 이들은 선원 휴게실로 이동해 잠을 자던 선원들을 깨웠다.
한국인 선원 이아무개(47)씨와 베트남인 선원 5명 등 6명이 자고 있었다. 갑판장 김씨는 선미로 가려다 순식간에 불길이 번지자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선장 김씨도 몸에 화상을 입은 채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들은 어선에서 뜯겨 나간 고무 펜더(방현재)를 안고 뛰어내렸고, 파도가 세자 떠내려갈까 봐 닻줄을 붙잡았다. 배는 불길에 타들어 가고 있었다.
이 시간 사고 해역에는 비가 내리고 파도가 높게 일었다. 가시거리도 짧아 갈치잡이에 나선 어선들은 닻줄을 내리고 가정박한 상태로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갈치잡이 어선들은 제주에서 480~650㎞ 떨어진 바다에서 조업하지만, 800㎞ 먼바다까지 나가 조업하는 경우도 있다. 갈치잡이 선원들은 낚시를 바다에 던지는 투승 작업에 앞서 잠을 자는데 투승 작업은 보통 오전 4~5시에 이뤄진다. 사고가 난 시간에는 잠을 잤던 것으로 추정된다.
4일 새벽 제주 우도 먼바다에서 불이 난 해양호. 제주해경 제공
해양호에서 2마일(3.2㎞) 남짓 떨어진 곳에 있던 갈치잡이 어선 서귀포선적 107수복호 선장은 누군가 ‘배에 불이 났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선장 김쌍근(51)씨는 주변 어선에 구조를 요청한 뒤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15분 만에 사고현장에 도착했다. 이미 해양호의 선수와 선미는 다 탄 상태였다.
수복호 선장 김씨와 선원들은 갑판이 모두 타 뼈대만 남은 어선을 보면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선원들을 찾아 나섰다.
선수 쪽 바다에서 누군가가 절박한 목소리로 구조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선장 김씨는 이날 오후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소리 나는 쪽으로 보니 선장과 갑판장이 닻줄을 잡고 있었다. 곧바로 줄에 매달린 구명조끼를 던지자 이들이 잡았고, 우리가 이를 잡아당겨 구조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수복호는 이들을 구조하고 이어서 불에 타는 해양호 주변을 두 차례나 돌면서 선원들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해양호 선장과 갑판장은 해경 헬기로 제주시내 병원으로 이송됐다.
당시 상황을 수복호 선장 김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했다.
해양호는 해경 경비함정 등이 진화 도중 이날 오전 7시23분께 수심 141m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지난 2일 오전 4시28분 서귀포시 성산포항을 출항한 해양호는 다음 달 1일 입항할 예정이었다.
한편 제주해경은 사고가 나자 경비함정과 주변의 어업지도선 등을 동원해 구조 및 수색작업에 나섰으며, 이날 오전 11시 현재 모두 28척의 해경·해군·관공선과 어선 등이 동원돼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제주해경은 사고 원인을 조사할 계획이며, 한국인 선원은 선주를 통해 가족에게 알렸고, 베트남 선원들은 주한베트남대사관을 통해 사고 사실을 알렸다고 말했다. 서귀포수협에는 사고수습대책본부가 설치됐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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