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사는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이 3일 오전 일찍부터 자진출국 신고를 하기 위해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고향에 돌아가면 일은 없지만, 이 기회에 집에 갔다가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돌아올 계획입니다.”
3일 오전 제주시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만난 중국인 왕파민(32)씨는 이렇게 말했다. 산둥성 린이에서 온 왕씨는 고향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다 지난해 8월 무사증 입국제도를 활용해 제주도에 들어온 뒤 눌러앉았다. 서귀포시의 한 감귤농장에서 숙식하며 생활하는 그는 오는 13일 돌아갈 생각으로 출입국·외국인청을 찾았다.
왕씨는 “불법체류자가 돌아갔다가 다시 입국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한 달 150만원을 받으면서 일을 했는데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는 외국인 불법체류자 200여명이 삼삼오오 모여 출국 신고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 중국인들이었다. 한쪽에서는 여러 명이 모여 ’불법체류외국인 자진출국 신고서’를 작성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제주도 내에서 숨어서 아르바이트하거나 농장이나 건설현장 등에서 일하던 중국인 불법체류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거 나오고 있다.
앞서 법무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불법체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는 6월 말까지 자진 출국하면 입국 금지 및 범칙금을 면제하고, 출국 후 일정 기간(3~6개월)이 지난 뒤 단기방문 비자(C-3, 90일)로 재입국하는 기회를 주고 있다.
제주 불법체류자들이 제주를 떠나는 것은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보다는 이 제도의 시행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 침체가 원인으로 보인다.
출국 신고서를 작성하던 양신홍(40)씨는 “2018년 12월에 제주도에 들어와 농장에서 일했는데 일자리가 줄어들어 오는 7일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서귀포 시내에 사는 중국 지린성 출신 장아무개(35)씨 부부는 제주도에 온 지 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새벽 4시에 아들(11)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장씨 부인 이아무개(35)씨는 “설 명절 전에 아들을 제주도에 불러 같이 지냈는데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들이 애초 2월18일 개학인데 중국도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학교들이 모두 개학을 연기해 온라인으로 수업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식당 2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 달 200만원을 번다. 이씨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확실히 경기가 침체한 것을 몸으로 느낀다. 아들과 함께 고향으로 잠시 돌아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남편 장씨는 건설현장에서 노동일을 하며 한 달 220~250만원을 벌지만, 요즘은 일이 크게 줄어 감귤원 비닐하우스 공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장씨는 “고향에 돌아가도 일자리가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제주에 1만여명 정도의 불법체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법무부가 자진출국을 유도한 이후 지난달 1일부터 25일까지 230명이 자진출국 신고를 했고, 54명이 출국했다. 나머지 176명은 오는 10일까지 출국할 예정이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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