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명의 이름 모를 이들에게 새 생명을 주고 떠난 고 김유나 양의 부모가 딸을 기리를 동백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유나야, 동백꽃 되어 우리 곁에 왔구나. 고마워. 너는 나의 영웅이야.”
23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신효동 라파의 집에서 작지만 아름다운 조촐한 행사가 진행됐다. 2016년 1월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다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지자 이름 모를 이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하늘나라에 떠난 김유나(당시 18)양의 부모와 유나로부터 장기 이식을 받은 외국인 등이 모여 김양을 기리는 행사를 연 것이다.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는 유나의 4주기 기일을 맞아 이날 라파의 집에서 사랑의 동백나무 식수를 진행했다.
운동본부는 이번 행사를 위해 유나의 신장과 췌장을 이식받은 김 양과 동갑내기인 미국인 킴벌리(텍사스주 피닉스)와 어머니 로레나를 한국에 초청했다. 킴벌리는 2살 때부터 당뇨병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하면서 당뇨합병증 등으로 신장이 망가져 혈액 투석기에 의존해 생활하다 2016년 기적처럼 김 양의 장기를 이식받아 건강을 되찾았다. 지난해 11월에는 결혼해 가정까지 꾸렸다.
유나 양으로부터 장기를 이식받은 킴벌리 모녀가 유나 양을 기리는 동백나무에 ’유나는 나의 영웅’이라고 쓴 메시지 카드를 걸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킴벌리는 생명의 은인인 유나 양의 어머니 이선경씨에게 “유나는 나에게 신장과 췌장은 물론 새로운 삶을 선물했다. 유나는 항상 내 안에 살아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씨는 “건강하게 사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쁘다. 유나도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는데 킴벌리도 사진 찍기를 좋아해 함께 많은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 이들은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꽃말을 가진 동백나무를 식수하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남기고 떠난 유나 양을 기렸다. 킴벌리는 ‘유나는 나의 영웅’이라는 글을 쓴 카드를 나무에 걸었다. 김 양의 아버지 김제박씨도 “한국까지 우리를 만나러 와줘 고맙다”며 이날 ’유나야 사랑한다’는 글을 쓴 카드를 나무에 걸었다. 킴벌리의 어머니 로레나도 “유나가 우리에게 준 생명은 기적과 같은 선물”이라며 김 양의 부모에게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킴벌리와 김 양의 부모는 행사가 끝난 뒤 김 양이 자주 찾았던 제주도 곳곳을 돌아보며 김 양의 흔적을 찾아 추모하고, 생전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였던 ‘월정리 바다에 가기’를 함께 하며 김 양을 기리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유나 양은 지난 2016년 1월23일 제주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이르자 가톨릭 신자인 유나 양의 부모가 딸과 아름다운 작별인사를 건네기 위해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이들의 결정으로 유나 양의 장기는 6명의 이름 모를 이들에게 이식됐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