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가 삿갓을 쓰고 나막신을 신은 ‘완당선생 해천일립상’ 국립제주박물관 제공
제주는 고려 말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바다 건너 가장 멀고 험한’ 최악의 유배지였다. 비행기를 타면 1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제주섬은 사면이 바다로 막힌 ’절해고도’였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중앙정부는 제주를 중죄인들의 ‘유배의 섬’으로 만들었다.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된 이는 300여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왕뿐 아니라 사대부, 중인, 평민 등도 있었다. 이들 유배인의 삶은 ‘유배문화’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제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국립제주박물관(관장 김유식)이 26일부터 전시하는 ‘낯선 곳으로의 여정, 제주 유배인 이야기’는 유배인들의 삶과 사랑, 학문, 제주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특별전이다. 3부로 구성된 전시는 제1부 ‘먼 길 낯선 여정, 제주 유배를 들여다보다’라는 주제로 유배의 역사와 여러 가지 이유로 제주에 유배된 인물들을 조명한다.
조선 제15대 임금에서 유배인의 신분으로 바뀐 광해군의 <광해군 일기>(국보 제151-4호)를 비롯해 사대부였던 충암 김정(1486~1521)의 <충암집>, 우암 송시열(1607~1689)의 초상화와 글씨, 한말 의병장 최익현의 초상(보물 제1510호)와 박영효의 글씨, 제주의 마지막 유배인 이승훈의 재판 기록 등이 소개된다. 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일반인들의 유배 기록이 있는 ‘대정현 호적자료’도 전시된다.
제2부 ‘낯선 땅 가혹하고도 간절했던 시간을 기다리다’편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3대가 제주에 유배된 가문, 유배생활 때의 사랑, 학문에 정진한 유배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마련된다. 조선 숙종 때 인현왕후와 희빈 장씨의 권력다툼에 연루된 김춘택 일가와 정조 시해사건에 연루된 조정철 일가의 초상화와 문집, 조정철이 제주 여인 홍윤애를 위해 써준 ‘홍의녀의 묘’ 탁본도 전시된다.
대표적인 유배인으로 제주 유배 때 추사체를 완성한 김정희의 ‘수선화 시 초고’, 충남 예산 김정희 종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벼루와 붓(보물 제547호), 추사의 제자 허련이 그린 ‘완당선생해천일립상’ 등이 전시된다. 3부 ‘제주 유배, 그 후’에서는 유학의 불모지였던 제주에 불어온 유학의 바람과 유배인에게 배워 과거시험에 합격한 제자들의 자료, 제주에 정착해 가문을 만든 입도조 자료 등이 전시된다. 추사가 쓴 대정 향교 ‘의문당’ 현판, 기근에 시달리는 제주도민을 살린 김만덕의 덕을 기리며 쓴 ‘은광연세’ 현판도 소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디지털 세한도 가상현실’ 체험코너도 마련했다. 이번 전시는 내년 3월 1일까지 국립제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된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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