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생존수형인들이 제주4·3도민연대와 함께 22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법원의 형사보상 결정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70여년 만에 재심에서 사실상 무죄 취지의 ‘공소 기각’ 결정을 얻어낸 제주4·3생존수형인들이 지난 20일 법원의 형사보상 결정을 받은 데 이어 또 다른 4·3생존수형인들이 재심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제주4·3 당시 군사재판의 무효화를 담은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난 22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형사보상 결정을 받은 4·3생존수형인들과 함께 기자회견에 나온 임재성 변호사는 “생존수형인들이 재심청구에서 공소 기각을 받고 형사보상 결정까지 끌어냈다. 이번 결정은 억울한 수감 생활에 대해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는 취지이지, 출소 뒤 제주에 돌아와 전과자로 낙인 찍힌 삶을 살아간 세월에 대한 배상은 포함되지 않았다”며 다음 달 국가를 상대로 배상 청구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함께 기자회견을 한 제주4·3도민연대는 “현재 11명의 4·3수형인이 더 생존해 있다. 이 가운데 8명이 재심청구에 나설 예정이다”고 말했다.
이번 제주4·3생존수형인들에 대한 형사보상 결정을 계기로 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의 무효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제주4·3특별법 개정은 4건이다. 이 가운데 대표적 개정안인 오영훈(제주 을·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7년 12월19일 대표 발의한 전부 개정안은 불법 군사재판의 무효화와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상 근거를 명확히 하고 있으나 1년 8개월째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제주4·3특별법이 국회에서 무한정 표류하자 지난 6월에는 제주4·3유족회를 중심으로 ‘4·3특별법 개정 쟁취를 위한 전국행동’을 구성하기로 했다. 송승문 회장은 “여야 정치권이 4·3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노력하겠다면서도 지금까지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4·3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는 역사의 명령이다”며 조속한 국회 통과를 요구했다. 임 변호사도 이날 “형사보상 결정이 기쁘지만 아직도 불법적인 4·3수형인 사건이 많이 남아있다. 수많은 희생자 가운데 예외적으로 18명만 보상을 받고 명예를 회복했다. 대규모 재심을 할 수는 있지만 현실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4·3특별법 개정을 통해 군사재판을 무효화해야 한다. 이번 형사보상이 4·3특별법 개정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1999년 9월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4·3특위부위원장인 추미애 의원이 정부기록보존소(현 국가기록원)에서 발굴해 공개한 수형인 명부에는 모두 2530명의 이름이 기록돼 있으나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옥사하거나 한국전쟁 시기 집단학살돼 행방불명인 상태다.
한편 이번 형사보상 결정을 받은 4·3생존수형인 18명 가운데 한 명인 양근방(87)씨는 “형무소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는데, 70년이 지난 한이 풀리는 것 같다. 우리가 겪은 세월을 생각하면, 이런 나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환하게 웃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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