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친척으로부터 받은 만년필이 제주의 삼남매를 평생 ’간첩’이라는 붉은 딱지를 달게 만들었다. 누명을 벗기까지 5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맏이는 무죄 판결을 받기 19일 전, 남동생은 5년 전 세상을 떠났다. 여동생만이 무죄 판결을 알게 됐다.
제주지법 형사2단독 이장욱 판사는 5일 1968년 반공법 위반 혐의로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김아무개(당시 71·2014년 별세)씨와 김아무개(74·여)씨 남매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반공법 위반 사실을 인지했는데도 이를 수사정보기관에 알리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앞서 법원은 지난 1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에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아 옥살이한 김태주(당시 81·2018년 별세)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제주시 도련동 출신의 김씨가 당시 간첩 혐의를 뒤집어쓴 것은 농업기술연수생으로 선발돼 일본에서 농업기술을 배우던 1967년 5~6월 일본의 친척들로부터 양복 중고 1벌(당시 5천원 상당)과 만년필 3개를 받은 것이 발단됐다. 김씨는 귀국 뒤 남동생과 여동생에게 일본에서 선물 받은 만년필을 한 개씩 나눠줬다.
김씨는 만년필이 고장 나자 수리점에 맡겼고, 만년필 안쪽에 ‘천리마’와 ‘조선 청진’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이를 본 수리점 업자가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는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관계자로부터 북한 천리마운동의 성공을 찬양하기 위해 제작한 선전용 만년필을 받았다며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에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고 수형 생활을 했다. 김씨는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고문을 받았다.
만년필을 받은 동생들도 북한에서 만들어 배포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수사정보기관에 알리지 않은 혐의(반공법 위반)로 기소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평생 농업발전에 힘써온 김씨는 간첩 혐의를 벗기 위해 2015년 2월 동생들과 함께 재심을 청구했다. 남동생은 이미 세상을 떠나 아들(53)이 재판에 참여했다. 지난해 9월17일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졌고, 김씨는 올해 1월18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김씨는 1심 선고를 19일 앞둔 지난해 12월30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재판부는 “일본의 친척으로부터 양복과 만년필을 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지만, 이를 유죄의 증거로 볼 수 없다. 조선총련이나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된다는 점을 알면서 만년필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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