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 주민 홍정표씨가 지난 12일 제주도청 앞에서 동물테마파크 설치 반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자 20마리, 호랑이 10마리, 코뿔소, 코끼리, 얼룩말…” 아프리카 세렝게티 국립공원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 첫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과 곶자왈을 품은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 마을 주변에 맹수 위주의 20여종 500여 마리 각종 동물이 있는 동물테마파크가 들어설 계획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말이 동물테마파크지 제주 중산간에 사자와 호랑이, 코뿔소를 풀어놓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입을 모았다.
선흘2리 마을회와 선흘2리 대명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회는 지난 10일부터 제주도청 앞에서 릴레이 시위에 들어갔다. 주민들은 “제주도는 주민들의 반대에도 지난 4월12일 대명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변경심의회에서 조건부 통과 의견을 냈다. 이제 원희룡 제주지사의 최종 서명만 남은 셈이다. 원 지사는 사업을 불허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명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은 조천읍 선흘리 58만㎡의 터에 사자와 호랑이, 곰, 얼룩말, 코끼리 등 20여종 500여 마리를 사육하고 관람하는 공간과 호텔, 글램핑장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애초 사업자가 지난 2007년 조랑말 중심의 승마장, 전통 체험장 등이 들어오는 소규모 동물테마파크 사업으로 승인을 받았으나 재정난으로 추진하지 못하다 지난 2016년 대명그룹으로 넘어간 뒤 사파리 형태의 동물테마파크로 추진되고 있다.
이주민과 주민들이 뒤섞여있는 이 마을이 마을 주변에 들어서는 동물테마파크 반대로 똘똘 뭉쳤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 어린이들이 동테마파크 반대 손팻말을 들고 동물테마파크 설치를 반대하고 있다. 선흘2리 마을회 제공
특히 선흘2리는 국내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과 제주의 허파라고 불리는 곶자왈 속에 자리 잡은 마을이고, 지난해에는 선흘2리가 위치한 조천읍 전체가 습지와 곶자왈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인정돼 세계 최초의 람사르습지도시로 지정된 마을이다.
주민들은 “현재도 여름철에는 물 부족으로 인한 단수로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데 120실 규모의 호텔과 대규모 글램핑장 및 부대시설이 들어오면 엄청난 양의 지하수를 쓰게 된다. 또 500여 마리 동물의 분뇨와 전염병을 막겠다는 이유로 막대한 터에 뿌려질 소독제와 고독성 농약 등은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또 “열대 기후에 사는 사자와 호랑이, 코뿔소 등을 들여와 전시한다는 것은 명백한 동물 학대”라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전국적으로 동물테마파크 반대 서명운동을 벌여 1만여명의 동의를 받아 지난달 24일 제주도와 도의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지난 12일 제주도청 앞에서 1인 손팻말 시위를 벌인 이 마을 주민 홍정표(62)씨는 30여년이 넘은 기자 생활을 하다 퇴직한 언론인 출신이다. 홍씨는 지난 2015년 제주시내에서 이주했다. 홍씨는 “비는 많이 내리지만 식생이 좋은 데다 거문오름 등 마을 내 오름만 7개나 될 정도로 자연생태가 살아있는 마을이어서 퇴직 직전 이사해 생활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마을을 만들고 싶은 게 주민들의 꿈이다. 우리 스스로 마을의 미래를 가꿀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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