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제주시 애월읍 새별오름에서 열린 제주들불축제. 제주시 제공
제주를 대표하는 들불축제가 존폐 기로에 섰다. 기후위기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 때문이다.
제주시는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2023 제주들불축제’를 열었다. 들불축제의 하이라이트는 해발 519m의 오름 남쪽 경사면 26만㎡에 이르는 억새밭에 불을 놓는 오름 불놓기이다.
그러나 4년 만에 대면행사로 치러진 올해 들불축제는 ‘불’ 없는 축제가 됐다. 다른 지방에서 잇따라 발생한 대형 산불로 정부가 산불경보 3단계(경계)를 발령한 데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제주들불축제는 오름 불놓기와 달집태우기, 횃불 대행진, 불꽃놀이 등 불을 소재로 한 6개 프로그램이 취소된 채 진행됐다.
애초 시는 소방과 자치경찰 인력을 대거 동원해 불놓기 등을 할 계획이었으나 막판 고심을 거듭했다. 다른 지방에선 산불 진화에 소방인력을 대대적으로 동원하는 터에 불놓기가 자칫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일었다.
제주들불축제는 1997년 옛 북제주군에서 시작됐다. 축제 초기에는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장소를 옮겨가면서 열다가 2000년부터 새별오름에서 열고 있다. 하지만 정월대보름 시기 중산간 지역인 새별오름 일대의 기온이 낮거나 비바람이 거세 2013년부터는 개최 시기를 3월로 바꿨다.
4년 만에 열린 2023 제주들불축제가 다른 지방의 잇따른 대형 산불로 불놓기가 취소된 채 진행됐다.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제주들불축제의 존폐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제주들불축제는 1970년대 초까지 중산간 마을에서 목초지에 불을 놓아 묵은 풀과 해충을 없앴던 전통적인 목축문화를 현대적 축제로 만든 것이다. 오름 한 면을 불태우는 장관을 보기 위해 축제 기간 평균 30만여명에 이르는 주민과 관광객이 축제장을 찾는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관광축제로도 지정됐다. 이제는 마땅한 축제가 없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한 상태이다. 그러나 2011년에는 구제역으로, 2020~2021년에는 코로나19로, 지난해에는 강원·경북 지역 산불로 행사가 취소되거나 변경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런 가운데 올해 들불축제를 계기로 제주도와 제주시청 누리집에는 들불축제가 기후위기 시대에 맞지 않는 축제라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이어졌고, 다른 지방 대형 산불이 겹치면서 들불축제를 다른 방식으로 변경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존폐 문제가 거론됐다. 제주녹색당은 지난 8일 성명을 내 “오름 훼손과 생태계 파괴, 토양오염 등 여러 문제와 함께 기후 재난 앞에서 탄소 배출을 늘리는 퇴행적 축제는 과감히 폐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시민 강성식(54)씨는 “제주의 대표축제가 눈총받는 축제로 전락했다. 이제는 실제 불놓기 행사를 폐지하고 새별오름을 무대로 첨단 기술을 동원해 미디어아트 쇼 등으로 축제 방법을 바꾸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며 “제주섬의 탄생 신화나 과거 목축문화를 거대한 미디어아트 등으로 재현하고, 민속놀이를 하는 마을을 참여시키면 미래와 과거, 현재가 공존하는 축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지난 13일 간부회의에서 “안전한 축제 준비로 괜찮다는 의견도 있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 폭설, 폭우, 한파 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들불축제가 국내는 물론 세계적 흐름과도 다르다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 들불축제 발전 방향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개선을 주문했다. 강병삼 제주시장은 “축제 시기나 진행 방법을 변경하는 등 시대 추세에 맞는 발전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시민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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