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훈 제주지사, 김경학 도의장, 김광수 교육감, 강철남 의원(왼쪽 두 번째부터) 등이 13일 개관한 제주주정공장 4·3역사관을 둘러보고 있다. 제주도 제공
제주4·3 시기 한라산 자락으로 도피했던 제주 사람들은 토벌 당국의 “자수하면 살려준다”는 말에 백기를 들고 귀순했다. 이들은 제주 주정공장에 수용됐다. 주정공장은 4·3 시기 최대의 집단 수용소였다. 수용소에서는 매일 취조와 고문이 이뤄졌다. 불법적인 군사재판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죄명도, 형량도 알지 못한 채 ‘육지’에 있는 형무소로 강제로 이송됐다. 그들이 섬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수용됐던 곳이 바로 제주 주정공장이다. 한국전쟁 시기에도 예비검속된 이들이 수용됐다가 학살됐다. 바다에 수장되기도 했다.
제주 4·3 75돌을 앞두고 당시 민간인들이 구금됐던 제주 주정공장 터에 4·3을 기억하는 공간이 문을 열었다.
제주도는 13일 오전 제주항연안여객터미널 맞은편 제주주정공장 터에서 ‘주정공장 수용소 4·3 역사관’ 개관식을 했다. 개관식에는 오영훈 제주지사와 김경학 도의장, 김광수 도교육감 및 4·3유족들이 대거 참여했다.
관람객들이 13일 문을 연 ‘주정공장 수용소 4·3역사관’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허호준 기자
도는 역사적 장소를 보전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2019년부터 사업비 50억원을 들여 공사에 들어가 역사관을 완공했다. 역사관은 상설 전시실과 추모의 방 등으로 구성됐고, 외부에는 위령 조형물과 도시공원을 조성했다. 지하 1층 전시관은 주정공장이 세워진 배경, 초토화작전, 선무공작과 하산, 주정공장 수용소, 불법 재판, 육지 형무소와 예비검속 등을 간략하게 소개한 영상과 사진, 그림, 글 등으로 채웠다.
주정공장은 일제 강점기 때인 1943년 5월 부분 완공돼 고구마를 주원료로 한 주정을 생산하다가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한때 항공기 연료를 생산하기도 했다. 4·3 시기에는 최대 규모의 집단 수용소가 바뀌었다. 집단 수용소는 지금의 역사관 동산 위쪽 창고와 종업원들의 기숙사 자리에 있었고, 역사관이 들어선 자리는 공장 시설 등이 있었다.
작은 방 한 칸에 수십명씩 몰아넣은 수용소의 환경은 열악해 낮에는 수용자들이 서로 밀착해 앉아야 했고, 밤에는 발을 뻗고 잘 수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 임산부들이 출산했고, 불법 재판을 받은 이들은 어느 날 섬을 떠난 뒤 돌아오지 못했다. 수용소 밖에는 수용자들을 보기 위해 먹을 것을 들고 서성거리던 가족들도 있었다.
도 관계자는 “주정공장 터를 4·3의 역사 현장으로 보전하고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역사관을 건립했다.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전시관을 꾸렸다”고 말했다.
13일 개관한 주정공장 수용소 4·3역사관 전시관 내부. 허호준 기자
하지만 전시 콘텐츠의 역사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석남(53·제주시 한림읍)씨는 “주정공장에서 무엇을 봐야 할지 콘텐츠가 너무 부족하다.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곳이 주정공장 아니냐”며 “전시물을 보면서 임산부의 출산, 고문, 열악한 수용시설, 가족들이 수용소에 수용된 가족을 찾아 서성대던 모습을 그릴 수 없다”고 말했다.
제주도 주민 강아무개씨도 “주정공장 터 역사관 건립은 의미가 있지만 4·3평화공원 내 기념관의 자료 일부를 가져다 놓은 듯 장소의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 일부 전시물은 복사물을 붙인 듯 수준이 떨어진다. 스토리 텔링이 이뤄져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전시 기법이 부족한 느낌이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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