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제주시 제주4·3평화공원 내 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4·3 희생자 유해 신원 확인 보고회에 참석한 유족이 70여년 만에 찾은 유해 앞에 분향하며 울먹이고 있다. 허호준 기자
“아버지, 일주일이면 돌아온다며 집에 가 있으라고 하셨는데, 이제야 오셨네요. 아버지한테 감사해요. 이제라도 찾았으니깐(돌아오셨으니깐).”
아버지가 74년 만에 돌아왔다. 5살 꼬마였던 딸은 80살이 됐다. 4·3 당시 군법회의에 회부돼 1949년 6월 행방불명된 김칠규(당시 34)의 딸 김정순씨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28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내 평화교육센터에서 제주도가 주최하고 제주4·3평화재단이 주관한 4·3 희생자 유해 신원 확인 보고회가 열렸다. 이날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군법회의 희생자 2명과 예비검속 희생자 1명 등 3명이다. 김칠규씨는 그 중 한 명이다.
이들의 신원은 지난해 유가족 279명이 참여한 채혈분을 제주공항에서 발굴된 유해와 유전자 대조를 통해 확인됐다.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자란 뒤 경찰서로 잡혀가 며칠 지내다가 행방불명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육지로 갔을 거다’, ‘바다에서 죽었을 거다’ 여러 말이 떠돌았지만 행방을 알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생각이 평생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1948년 8월 어머니가 읍내에 가서 집 짓는 재료를 사 오라는 말에 집을 나섰다 행방불명된 아버지(강창근·당시 20)를 찾은 강술생(77)씨는 내내 눈물을 훔쳤다. 강씨는 “유전자 감식을 위해 채혈을 한다는 광고를 봐도 와 닿지 않아 채혈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가 지난해 용기를 내 채혈했다”며 “생각지도 않게 신원이 확인됐는 말에 너무 기뻐 잠을 이루지 못했다. 75년이 지난 지금 처음으로 아버지라고 불러보고 한이 맺혀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은 4·3 당시 군법회의 희생자로 제주공항에서 학살 암매장됐다.
또 다른 희생자 김두옥(당시 26)은 예비검속 희생자로 알려졌다.
이날 신원 확인 경과보고에서 이숭덕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희생자들의 생전 자료가 많지 않아 유전자 검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새로운 유전자 감식 방법들이 도입됐지만, 기술적 노력뿐 아니라 유가족들의 참여가 있어서 신원이 확인될 수 있었다”며 “새로 찾는 희생자 유족의 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많은 관심이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이날 추도사를 통해 “이제 가족의 품에서 평안히 안식하시기를 바란다. 나머지 유해들도 신원이 확인돼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온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이날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보고회 이후 4·3평화공원 내 유해봉안관에 안치됐다.
4·3 희생자들에 대한 유해 발굴은 2006년 제주시 화북천을 시작으로 2007~2009년 제주공항, 2021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등에서 진행돼 그동안 411구의 유해가 발굴됐고,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141명이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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