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라산 영실 존자암 경내에서 돌아다니는 노루 가족. 허호준 기자
한때 4000마리 아래로 떨어졌던 제주 노루의 개체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관련 조례를 개정해 2년 넘게 포획을 금지하고 서식 환경을 개선한 결과다. 지금 추세면 1~2년 안에 적정 개체 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11월12일 한라산 해발 1200m 높이에 있는 영실 존자암에 이르자 노루 가족 세마리가 한가로이 경내의 풀을 뜯어 먹다 나그네 인기척에 귀를 쫑긋거렸다. 기자가 한달에 두세차례 찾는 존자암에서 노루를 마주친 건 지난 여름이다. 처음엔 한마리였다가 가을이 되자 세마리로 늘었다. 존자암 입구까지 노루가 내려와 지나가는 이들을 쳐다보다가 수풀 속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와 표선면 가시리 등 중산간 지역에서는 노루들이 무리를 지어 도로변에 나와 풀을 뜯어 먹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정도다. 한때 유해동물로 지정돼 포획 대상에 올랐던 제주 노루가 사냥이 금지되면서 마릿수를 회복한 덕이다.
제주 노루는 오랫동안 한라산을 대표하는 야생동물이었다. 하지만 마릿수 증감에 따라 처지가 냉·온탕을 오갔다. 1990년대에는 사냥꾼들의 밀렵 등으로 마릿수가 줄자 한라산 어리목 등지에서 노루의 먹이인 ‘송악 줄기 주기 운동’을 하는 등 대대적인 보호 캠페인이 펼쳐졌다. 이런 노력이 성과를 거둬 노루 마릿수는 2009년 1만2800여마리까지 증가했다.
제주 한라산 영실 존자암 경내를 돌아다니는 노루. 허호준 기자
그러나 노루가 늘자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농경지에 침입해 싹과 순을 먹어치워 농가의 피해 민원이 빗발친 것이다. 노루 탓만은 아니었다. 노루가 사는 중산간 지역에 골프장이 무더기로 문을 열고, 광폭 도로가 새로 뚫리는가 하면 더덕 등 특용작물 경작이 확산되면서 서식 환경이 크게 나빠진 게 원인이었다.
제주도의회는 농가들의 민원이 계속되자 논란 끝에 2013년 3월 의원입법으로 노루를 ‘유해동물’로 지정하는 내용의 ‘제주도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 조례’를 제·개정해 2019년 6월까지 포획할 수 있게 허용했다. 이 기간 7000여마리의 노루가 포획됐고, 2400여마리는 달리는 차량에 ‘로드킬’을 당했다. ‘노루 대학살’이라 부를 만한 규모였다.
포획이 허용된 뒤 제주도의 노루 마릿수는 2015년 8000여마리로 줄었고, 2016년에는 2009년의 절반에 해당하는 6200여마리로 줄었으며 2017년에는 5700여마리로 더 줄었다. 2018년엔 3800여마리로 급감했다.
제주 마방목지에 여러마리의 노루들이 보인다. <한겨레> 자료사진
제주도는 결국 2019년 7월 노루를 유해동물에서 제외하고 포획을 금지했다. 그러자 개체 수는 꾸준히 늘었다. 물론 마릿수가 늘면서 로드킬을 당하는 노루도 함께 늘었다. 2018년 440마리에서 2020년 517마리로 늘더니 2021년 653마리가 도로에서 죽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전문가 의견과 국내외 연구 결과를 토대로 노루의 적정 마릿수를 6100여마리로 추산했다.
노루가 늘어난 데는 중산간 지대에 사는 야생화된 유기견을 집중 포획한 것도 적잖은 기여를 했다. 제주도는 지난해 처음으로 중산간 지대에서 640마리의 유기견을 포획했다. 유기견들은 축사에 침입해 가축을 물어 죽이거나 야생 노루를 공격해왔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유해동물 지정에서 해제된 뒤 조금씩 개체 수가 증가하고 있다”며 “다만 서식지 감소와 로드킬, 유기견 등에 의한 피해 등으로 예전처럼 증가 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제주 노루의 개체 수가 5000마리를 넘었을 것으로 본다. 이 추세면 1~2년 안에 적정 개체 수에 도달하게 된다. 제주에 서식 중인 노루 개체 수는 다음달 발표된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