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평화공원 내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각명비를 보면 ‘ㅇㅇㅇ의 자’와 같은 이름 아닌 이름이 보인다. 이름도 없이 생후 1~2살 때 숨진 희생자들이다 제주4·3 당시 10살 미만의 아동 학살 희생자는 최소한 800여명에 달한다.
4·3 시기 어린이 희생자를 조명하고 추모하기 위한 영화가 제작되고 있다. 예술영화 ‘폭낭의 아이들’(감독 사유진)이 오는 17일 제주시 CGV 제주노형점 2관에서 시사회를 연다. 이 영화는 지난 2020년 11월 4·3평화공원 내 각명비에서 10살 미만의 어린이 희생자 818명의 이름을 무명천(위패)에 일일이 적고, 평화의 숲의 폭낭에서 차례로 한 명씩 불러주는 것으로 시작으로 추진됐다.
4·3을 다룬 영화가 나오기는 했지만, 어린이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한 된 적은 없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제작진은 평화공원에서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의 4·3 시기 희생된 아동들이 묻혀있는 너분승이 애기무덤까지 어린의 희생자의 위패를 모시고 5시간 동안 도보 순례해 북촌리 유족회장 고완순씨에게 전달했다. 고 회장은 위패가 담긴 함을 받아 소나무에 묶어 넋을 위로하고 유족회 부녀회원들과 할머니들이 와서 가마솥에서 밥을 짓고 제대로 먹지 못해 죽은 아이들을 위해 주먹밥을 동백꽃 모양으로 만들어 위로했다.
4·3 예술영화 ‘폭낭의 아이들’의 한 장면. ‘폭낭의 아이들’ 제작사 제공
‘폭낭’은 팽나무의 제주어로, 과거 제주에는 마을의 상징처럼 서 있는 오래된 팽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이 뛰어놀았다. 제작진은 “당시 아이들은 어떤 이념이나 가치, 세계관을 갖기도 전에 어른들의 정치 프레임으로 무차별 죽임을 당했다. 그 사건 하나하나가 바로 제주 4·3사건 자체다”라며 “‘폭낭의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한을 풀어주고 잊힌 그들을 기억하는 중요한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영화는 1부 폭낭의 아이들, 2부 너븐숭이, 3부, 애기무덤, 4부 동백 등 4부로 구성됐다. 사유진 감독은 “어린이들이 동백꽃이고 동백꽃은 제주 신화에서 환생을 의미한다”며 “폭압적 상황에 단절된 삶을 살았던 아이들이 평화로 다시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내용이다”고 말했다.
사 감독은 2016년 4·3 당시 여성 희생자의 이야기를 다룬 ‘제주: 년의 춤’을 제작 상영했고, 2017년엔 광주 5·18국립묘지에서 밤새 진혼 퍼포먼스를 펼친 장면을 담은 영화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를 제작, 상영한 바 있다. 영화는 내년 3~4월 개봉 예정이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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