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천미천이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반드시 지켜야 할 자연유산에 선정됐다. 제주도에서 가장 긴 자연하천인 이곳은 홍수 예방을 명분으로 수십년 동안 정비사업이 반복되면서 환경훼손에 대한 우려가 컸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이사장 조명래)와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은 제주 천미천과 서울 서대문구 충정아파트 등 전국 6곳의 자연·문화자원을 ‘이곳만은 꼭 지키자!’ 대상 지역으로 선정해 오는 22일 시상식을 연다고 19일 밝혔다.
천미천은 한라산 해발 1100m 부근에서 발원해 제주시와 서귀포시 경계를 구불구불 넘나들다가 서귀포시 표선면 신천리에서 바다와 만난다. 제주도에는 143개 하천이 있는데, 천미천이 25.7㎞로 가장 길다. 화산 지형인 제주의 하천은 평소엔 물이 지표면을 흐르지 않고 지하로 복류하다가 비가 많이 내릴 때만 땅 위로 흐르는 건천이 대부분이다. 천미천도 비가 오지 않을 땐 물이 흐르는 모습을 중·하류에서만 볼 수 있다.
천미천은 곳곳에 물이 고인 소가 있고, 하천 양안이 울창한 숲을 이뤄 천혜의 비경을 자랑한다. 이 숲은 해안에서 한라산까지 조류와 육상동물들이 오가는 통로이자 서식처 역할을 하는 제주 지역의 핵심 생태축이다. 내셔널트러스트 쪽은 “천미천은 야생조류 생존의 3대 필수 요소인 물과 먹이, 다양한 서식공간이 잘 갖춰져 있다. 인위적인 방해 요인도 없다”고 밝혔다.
이곳의 생태계가 위협받기 시작한 건 1990년대다. 하류 지역에서 홍수 피해 예방 등을 명분으로 크고 작은 정비공사가 시작되면서 천변엔 제방이 건설되고 바닥도 평탄화 작업이 이뤄졌다. 그 뒤에도 하천 정비작업이 반복되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천미천을 이용한 제주도 내 최대 규모의 성읍 저수지(125만t)가 조성됐고, 지금도 구간별로 나눠 수백억원씩 들여 정비공사를 벌이고 있다.
내셔널트러스트 쪽은 “지난 30여년 동안 수십 차례 개별적, 산발적으로 하천 정비사업을 벌여 소중한 자연자원을 잃고도 또다시 홍수 피해 예방을 목적으로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천미천 하류는 만신창이가 됐고, 중류를 넘어 상류 부근까지 정비사업으로 파괴될 위험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제주환경운동연합도 “공사 명분인 홍수 피해와 관련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공사가 추진돼 제주 건천이 훼손되고 있다”며 “천미천만 아니라 제주도 내 곳곳의 하천이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했다.
천미천을 끼고 녹색의 생태축이 보인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제공
<한겨레>는 지난해 6월13일 ‘이토록 아름다운…제주에서 가장 긴 천미천, 이대로 사라지나’를 통해 하천 정비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당선자 신분이던 6월22일 천미천 정비사업 현장을 방문해 “재해 예방이 명분이더라도 하천 원형을 훼손하는 방식의 정비사업은 더는 안 된다. 천편일률적으로 제방을 쌓거나 콘크리트 담벽을 만들 게 아니라 친환경적인 공법으로 침수 피해 예방 대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