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구좌읍 세화마을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질그랭이거점센터 내 카페 ‘477+’. 허호준 기자
지난 12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질그랭이거점센터의 2층 카페 ‘477+(플러스)’로 들어가자 넓은 창문으로 푸른 하늘과 모래사장,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몰려오는 파도가 그림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관광객들이 이 지역 특산물로 만든 갓 구운 ‘구좌 당근빵’과 커피를 주문하고, 한쪽에서는 주민들이 한담을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카페 한쪽에는 친환경 소재로 만든 소품 진열대가 놓여 있었다.
카페가 자리잡은 곳은 원래 마을 종합복지타운이었다. 주민들은 고령화와 이주민 유입 등으로 고민하던 마을 공동체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 협동조합 만들기에 나섰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질그랭이거점센터다. 결혼식장과 피로연장, 리사무소로 사용하던 종합복지타운 건물은 리모델링을 거쳐 1층은 리사무소와 마을협동조합, 2층은 마을카페, 3층은 공유오피스, 4층은 숙박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제주시 구좌읍 세화마을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다랑쉬 투어 체험 행사가 12일 다랑쉬 오름 일대에서 열렸다. 세화리 마을협동조합 제공
마을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은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국비 등 86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으면서 본격화했다. 마을의 변화를 꿈꾸는 주민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전문가 컨설팅을 거치며 마을 사업을 추진했다. 협동조합 설립에 뜻이 맞는 주민들이 나서고, 부지성 이장이 팔을 걷어붙였다. 부 이장은 세화리 내 6개 자연마을 동장들을 설득해 2019년 8월 협동조합 설명회를 마을별로 열었다. 엿새 동안 마을을 찾아다니며 매일 오후 6시부터 4시간 동안 사업의 취지와 마을의 비전을 설명했다. 그 결과 주민 700여명 중 농민과 해녀 등 477명이 2억7천만원을 출자해 2019년 10월 세화마을협동조합이 설립됐다.
마을카페에 붙인 ‘477+’라는 이름은 부 이장이 협동조합에 참여한 조합원 477명과 앞으로 가입하게 될 조합원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조합원은 현재 492명으로 늘었다. 카페에서는 당근 등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 음료수와 빵을 만든다.
3층 공유오피스로 올라가자 주민과 관광객 3~4명이 바다로 난 창 주변에 앉아 노트북 작업을 하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장소연(36)씨는 “제주도에 이런 곳이 있을 줄 몰랐다.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혼자 사색하거나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12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질그랭이거점센터 공유오피스에서 양군모 피디와 체험 행사에 참여한 제주도청 수습사무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허호준 기자
공유오피스는 최근 뜨는 ‘워케이션’(일과 휴가를 병행하는 근무형태) 장소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컴퓨터와 세미나실, 복합기, 사물함, 전화부스 등이 마련돼 있다. 협동조합 설립을 주도한 양군모(34) 마을 피디(PD)는 “다음주에 3개 기업 30여명이 이용을 예약했다. 보통 4박5일 정도 근무하고, 2박3일 정도 여행한다”고 귀띔했다. 마침 제주도청 수습사무관들이 마을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여행사의 체험 행사에 참여한 뒤 세미나실에서 양 피디의 설명을 들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오름을 스쳐 지나갔을 텐데 이번 체험 행사를 통해 오름을 새롭게 보게 됐습니다.” 제주도청 권태균 사무관은 이렇게 말하며 “행정에서 추진했으면 획일적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주민들이 마을의 특성을 살려서 변화를 꾀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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