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전수관에서 ‘고 서재 김윤수 선생 고별식’이 봉행된 가운데 상두꾼을 앞세우고 운구차가 이동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한평생 아픈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던/ 큰 별 하나가 하늘에 아로새겨졌다/ 저 자신 아픈 육신을 벗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미여지벵디 지나 서천꽃밭 지나/ 하늘에 닿았다/ 전설 따라 흐르는 미릿내 그 어딘가쯤/ 그 자신 전설이 되어 빛나고 있다.”
시인 김경훈씨가 제주의 ‘큰 심방’ 고 김윤수 선생을 추모하는 고별시 ‘큰 별 하나가’를 읽어내려가자 앉아있던 유족들과 문하생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8일 오전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 전수관 마당에서 치러진 ‘고 서재 김윤수 선생 고별식’은 별이 된 고인을 떠올리며 아쉬워하는 울음소리로 메워졌다. 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 사무장을 맡았던 인연으로 고별식 사회를 보던 김석윤씨는 “고인은 제주의 삶과 아픔으로 함께했다”고 고인을 떠올리며 몇번이나 말하다가 멈추기도 했다.
칠머리당영등굿 예능보유자 김윤수(76) 심방(무당)의 젊은 시절은 힘들었지만, 미여지벵디(저승으로 떠나는 공간)를 지나 서천꽃밭(제주 무가 속 생명의 공간)으로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이날 고인의 장례식은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제주전통문화예술인장’으로 치러졌다.
8일 오전 제주시 건입동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전수관에서 열린 김윤수 심방의 고별식에서 오영훈 지사가 유족과 지인, 문하생들과 함께 걷고 있다. 허호준 기자
제주 큰 심방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 고 김정호 선생의 증손자인 고인은 16살 때부터 심방인 큰어머니한테 굿을 익혔다. 고인은 1999년 5월 국가 무형문화재 제71호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예능보유자로 인정됐고, 1998년 4월 4·3 50주년 해원상생굿을, 2016년엔 일본 오키나와에서 조선인 종군위안부 위령제를 집전하기도 했다.
오영훈 제주지사의 고인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오 지사는 이날 고별사를 통해 “심방으로 산다는 것은 천대받고 멸시받는 일상을 견뎌내는 것이었다. 굿을 하다가 돌에 맞기도 하고 굴이나 숲 속에서 숨어서 굿을 해야 하는 일도 많았지만, 고인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며 “고인은 우리 사회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제주의 큰 어른이었다”고 회고했다.
8일 오전 제주시 건입동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전수관에서 봉행된 김윤수 심방의 고별식에서 김희숙씨가 고별공연을 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이날 오 지사가 고별사를 읽으면서 크게 애통해 하는 모습을 본 유족 등 참석자들도 함께 숙연해 했다. 오 지사는 “고인은 우리에게 위로였고, 편안한 안식이었으며, 기댈 수 있는 큰 나무였다”며 “저에게 고인은 가장 존경하는 역사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였다”고 추모했다. 오 지사는 이날 고별식 내내 자리를 하면서 상여 끈을 잡고 걸어 고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솔향 김희숙 선생의 고별 공연도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고, 그에게 굿을 배운 전수생들은 ‘스승의 은혜’를 부르면서 흐느꼈다.
고별식이 끝나고 전수관에서 우당도서관 입구까지 상여 대신 운구차에 상여에 다는 꽃을 달고 친지와 지인들이 끈을 잡아 상두꾼 역할을 했고, 그 가운데서 고인의 고향 신촌리 허재군씨의 구성진 상여소리가 사라봉의 파란 하늘 위로 울려 퍼졌다.
김 시인의 고별시처럼 고인은 “온갖 수모 굴욕 다 이겨내고/ 세상사 어두운 악연 훌훌 풀어내다/ 그 자신 단골들 인연 접고/ 저 청한 하늘에 밝은 별이 되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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