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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근거는요?”…학생들이 묻고 판·검사가 답한 4·3 재심

등록 2022-08-09 16:37수정 2022-08-09 17:01

9일 4·3 군사재판 ‘10차 직권재심’ 재판에서
제주중앙여고생들 재판부·검찰에 잇단 질문
“미래세대 ‘인권·자유’ 역사교육장으로 발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지석. 허호준 기자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지석. 허호준 기자

“70여년 전 일이어서 굉장히 오래돼 관련 자료도 제대로 없을 텐데 어떻게 무죄로 단정할 수 있나요? 무죄로 판결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난 3월부터 진행하는 4·3 직권재심 재판이 진상규명과 희생자·유족의 명예회복을 넘어 미래세대를 위한 인권과 자유를 위한 ‘역사 교육의 장’으로 발전하고 있다.

9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형사4부(재판장 장찬수) 심리로 진행된 ‘10차 4·3사건 직권재심’ 재판은 여느 재판과는 달랐다. 방청석에서는 제주 중앙여고 2학년 학생 7명이 참석해 재판을 지켜봤다.

재판부는 “증거가 없으면 유죄로 판단할 수 없다”며 군사재판 수형 희생자 30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장 부장판사는 판결이 끝난 뒤 법정을 찾은 학생들에게 “궁금한 점이 있으면 손을 들어 물어보라”고 권유했다.

장 부장판사는 정재희양의 질문에 “질문에 답이 있다. 죄를 지었는지에 관해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만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 있다”며 “이 사건 피고인들은 그 당시도, 지금도 혐의를 인정할만한 명백한 증거가 없는 만큼 당연히 무죄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장 부장판사는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개인이 가진 자유와 권리를 그 어떤 부당한 방법으로도 침해할 수 없다는 대원칙이 나왔다”고도 했다. 학생들은 재판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같이 온 강혜인양은 “재판부가 재판에서 가장 신경 써서 살펴보는 부분은 무엇이며, 기억에 남는 사례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장 부장판사는 “이 재판은 일반 형사재판과는 다르다. 당시 제주도민은 이념이라는 광풍에 휩싸여 제대로 된 절차도 없이 졸속으로 진행된 재판으로 엄청난 희생을 당했다. 남아있는 유족들도 말할 수 없는 희생을 당했다”며 “그 고통을 겪으면서 70여년 동안 온전히 견딜 수 있겠나. 나는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장 부장판사는 “그런 의미에서 법정에 출석한 유족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분들의 한과 응어리를 이 법정에서 풀어드리는 것이 저의 소임이다. 여러분들이 귀한 시간을 내서 온 것은 자유와 권리의 중요함을 알기 위해 온 것이다”고 덧붙였다.

제주4·3평화공원 내 1만5천여명에 이르는 4·3 희생자들의 위패를 모신 위패봉안실. 허호준 기자
제주4·3평화공원 내 1만5천여명에 이르는 4·3 희생자들의 위패를 모신 위패봉안실. 허호준 기자

김단비양은 “직권재심을 준비하면서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있느냐”며 검찰에 질문을 던졌다. 이에 변진환 검사는 자신이 ‘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에 오게 된 이유부터 답했다.

변 검사는 “제주도 출신이지만 4·3사건을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을 뿐 잘 몰랐다. 대학 시절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읽은 거밖에 없고, 내용이 어려웠다”며 “4·3사건 재심을 맡아 관련 진상조사보고서와 연구논문, 기존 사례 등을 찾아 읽으며 당시 군사재판의 문제점을 조금씩 알게 됐다”고 말했다. 변 검사는 “가장 중요한 건 정확성이다. 군사재판이 잘못돼서 재심 청구를 하는 건데 정확해야 하지 않으냐”고 했다. 이어 “신속성도 중요하다. 기존 재심 청구 재판은 1~2년이 걸렸지만 이번 직권재심 재판은 1~2개월 안에 끝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료 미비로 재판이 길어지면 고령의 유족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과 함께 온 채기병 교사는 “4·3 직권재심 재판을 처음 방청했는데 학생뿐 아니라 교사인 저도 많이 배울 기회였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정에서는 유족들도 사연을 풀어냈다. 고 이군형의 동생 이동은(79)씨는 “5살 때 형님과 같이 집에 있었는데 두 명이 들어와 형님을 데리고 나갔다. 쫓아갔는데 계속 가길래 돌아왔다. 그게 형님을 본 마지막이었다”고 했다. 고 이동천의 아들 이효호(81)씨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4·3이 발발해 해안마을로 내려왔다. 뒤늦게 내려온 아버지를 제주시내에서 어머니와 함께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며 “모두 돌아가시고 16살에 고아가 됐다. 슬픈 것은 나를 ‘아이 새끼’로 보지 않고 어른들이 ‘폭도 새끼’라고 했던 것이다”고 말하자 학생들은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장 부장판사는 학생들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여러분은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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