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평화재단이 ‘전국청소년 4·3평화캠프’를 연 가운데 조정희 재단 기념사업팀장이 25일 청소년들에게 4·3평화공원 내 <비설> 조각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 제공
“여러분이 서 있는 이 아름다운 곳이 70여년 전에는 고통스러운 비극의 현장이었습니다.”
26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일출봉으로 들어가는 터진목에서 오승국(전 제주4·3평화재단 부센터장)씨가 말했다. 무더운 날씨에도 그의 설명을 듣는 학생들 표정은 줄곧 진지했다. 제주올레 1코스에 있는 터진목은 1948~1949년 4·3 당시 학살 터였다.
“성산일출봉과 바다가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이 찾는 이곳이 학살 터였다는 게 상상이 안 돼요.” 이현빈(18·광주 동성고2)군은 “5·18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4·3은 몰랐다. 왜 그때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알고 싶어 캠프에 참가하게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고희범)과 5·18기념재단, 광주시교육청이 함께 지난 25~27일 4·3평화공원과 유적지에서 진행한 ‘전국청소년 4·3평화캠프’는 청소년들이 과거사를 통해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공감하고 학습하는 현장이었다. 제주지역 30명, 광주지역 30명 등 모두 60명의 고교생이 이 캠프에 참가했다.
제주4·3평화재단이 주최한 청소년 평화인권캠프에 참가한 제주와 광주 청소년들이 25일 4·3평화공원 내 위령제단에 헌화하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 제공
학생들은 첫날인 25일에는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내 기념관을 둘러보고 위령제단을 참배했다. 이어 조정희 재단 기념사업팀장 안내로 4·3 희생자들의 위패가 있는 위패봉안실 등 공원과 행방불명인 표석, 각명비 등 공원 내 시설물을 둘러봤다. 1만5천여명에 이르는 희생자 이름이 적힌 위패와 행방불명인 표석을 보며 탄식하거나 한숨을 내쉬는 학생도 있었다.
26일에는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이 ‘사월에서 오월까지, 문학으로 읽는 저항의 역사’를 주제로 진행한 특강을 들었다. 오후에는 오승국씨 안내로 4·3 당시 대표적 학살마을인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에서 4·3사건을 다룬 소설 <순이삼촌>의 작가 현기영의 문학비와 기념관을 둘러보고, 삶터에서 강제로 쫓겨난 주민들이 모여 살던 ‘낙성동 4·3성터’도 답사했다. 강혜인(18·제주 중앙여고2)양은 “4·3을 단순히 많은 도민이 학살당한 사건으로만 알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제주 주민의 저항과 항쟁과 같은 몰랐던 사실을 많이 배우게 돼 뜻깊다”고 말했다.
제주4·3평화재단의 청소년 평화인권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지난 26일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4·3 당시 학살 터 터진목으로 가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 제공
평화캠프는 제주 학생들에게는 5·18을, 광주 학생들에게는 4·3을 알아가는 장이기도 했다. 마지막날인 27일 조별 토론 및 발표에서 황기연(18·광주 진흥고3)군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역사를 알게 됐다. 제주 학생들과 함께 활동하며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어서 기뻤다”며 활짝 웃었다. 양형규(16·제주제일고1)군은 “4·3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고 5·18민주화운동도 생각해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제주4·3 당시 대표적 학살마을인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에 있는 <순이삼촌> 문학비를 찾아 오승국씨의 설명을 듣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 제공
조정희 팀장은 “과거사의 역사적 진실을 기억하고, 그 교훈을 후세대에 전승하자는 취지에서 평화인권캠프를 운영하고 있다”며 “광주와 제주의 학생들이 이번 캠프를 통해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과 가치를 공유하고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주도 안팎의 고등학교에서 추천받은 학생과 4·3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2010년부터 매년 한차례 열리는 이 평화캠프에는 모두 1025명의 학생이 다녀갔다. 평화재단은 제주지역 학생들이 광주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배우는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