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특별재심 청구인들의 소송을 맡은 변호인 쪽이 26일 재심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제주4·3 희생자에 대한 특별재심 과정에서 촉발된 ‘희생자 결정’에 대한 검찰의 문제 제기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제주지방법원 형사4-1부(재판장 장찬수)는 26일 4·3 희생자 68명이 제기한 특별재심 청구소송과 관련해 2차 심문기일을 진행했다. 김종민 총리실 제주4·3중앙위원회 위원이 증인으로 출석해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 쪽의 질문에 답변했다. 법정에서 진행된 4·3 강의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날 심문은 지난 12일 재판에서 검찰이 재심을 신청한 4명의 희생자에 대해 4·3 당시 ‘이력’을 문제 삼아 ‘헌법재판소의 희생자 제외 기준’에 맞는지 추가 심리를 요구해 이뤄지게 됐다.
헌재는 2001년 9월28일 4·3 당시 진압에 직·간접 관련 있는 인사들이 제기한 4·3특별법 위헌 청구소송을 각하하면서 4‧3 희생자 범주에서 배제해야 할 대상을 열거한 단서조항을 달았다. 4·3 중앙위원회는 이 기준에 따라 “△4·3 발발에 직접 책임이 있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핵심간부 △군·경의 진압에 주도적·적극적으로 대항한 무장대 수괴급 등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한 자로서, 현재 우리의 헌법체제 하에서 보호될 수 없다 할 것이므로 희생자의 대상에서 제외토록 하되, 이 경우 그러한 행위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명백한 증거자료가 있어야 한다”며 희생자 제외 대상을 명시했다.
이 때문에 이날 심문을 진행하게 되자 검찰이 이들 4명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백한 증거’ 자료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했다. 검찰은 그간 ㄱ씨는 “남로당 핵심간부로, 형무소에서 한국전쟁 이후 형무소 문이 열리자 월북 뒤 남파간첩으로 활동했다”, ㄴ씨는 “제주시 한 마을의 남로당 조직 책임자로 경찰후원회장 등을 살해했다”, ㄷ씨는 “제주시 한 마을의 폭도대장이었다”, ㄹ씨는 “형무소 수감 중 월북했다가 중국으로 갔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날 검찰이 내놓은 근거 자료는 4·3 중앙위원회의 심의·결정 과정에서 제출했던 자료이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자료, 혹은 일부 증언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 위원은 과거 기자 시절의 활동을 언급하며 “4·3 취재 당시 군경을 포함한 7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의 증언을 채록했다. 다른 증언 및 사료와의 교차 검증을 거쳐 사실로 보이는 것만 보도했다. 사실이 아니라면 당연히 마을 내에서 반응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사후 검증까지 이뤄진 셈”이라고 밝혔다. 검찰의 자료 제시가 일부의 증언에 국한돼 검증 절차가 부실하다는 취지의 비판이다.
이날 재판을 지켜본 4·3 전문가들은 검찰의 문제 제기에 대해 ㄱ씨의 월북과 남파된 경위와 간첩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판결문 등 자료를 제시하지 못했고, ㄴ·ㄷ씨에 대해서는 일부의 구술로 교차 검증이 부족했으며, ㄹ씨는 사실관계가 다르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도 이들의 이름을 문서 등에서 찾을 수 없고, 이들 중 일부는 오히려 마을에서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증언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검찰은 재판이 끝나가자 입장 표명을 하겠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4·3 중앙위원회의 희생자 결정과 법원의 판단을 최대한 존중할 것이다.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자는 것이지 사상검증이 결코 아니다. 사상검증을 할 생각도 능력도 전혀 없다”고 마했다.
재판부는 “조만간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한 뒤 변론 기일을 끝냈다.
제주4·3연구소는 이날 논평을 내고 “검찰이 내놓은 자료는 부실했고, 4·3 중앙위원회의 희생자 결정을 존중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4·3 희생자 결정에 대한 문제 제기가 발목잡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4·3연구소는 또 검찰은 희생자 명예회복에 공감하고, 4·3 중앙위워회는 희생자 결정 기준을 전향적으로 개선할 것을 촉구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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