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제주시 삼양동 삼양해수욕장 주변에 있는 용천수 샛도리물에서 학생들이 물놀이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지난 15일 오후 제주시 삼양동 삼양해수욕장에서 동쪽으로 300여m 떨어진 ‘샛도리물’. 청소년 20여명이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있다. 물이 맑고 차가워 바닥이 훤하게 보인다. 샛도리물은 바다와 접해 있으나, 지하 바위틈에서 솟아난 민물이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30여m 더 가면 돌담으로 둘러싸인 노천탕이 모습을 드러낸다. 솟아난 민물은 바다로 흘러간다.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에는 식수로 사용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주민들이나 외지에서 자가용을 타고 와서 몸을 식히고 갑니다. 토·일요일에는 노천탕이 가득 찰 정도로 주민들이 찾아요.” 노천탕에서 만난 주민 김아무개(62)씨의 말이다. 김씨와 얘기하는 도중에 주민 고아무개(73)씨가 끼어든다. 고씨는 “저녁에도 4~5명은 샛도리물을 찾아 더운 몸을 식히고 간다. 차가운 민물에 앉아 몸을 식히고 집에 가면 잠도 잘 온다”고 너스레를 떤다.
제주시 사수동 홀캐물. ‘얼음물 목욕탕’이라는 펼침막이 이채롭다. 허호준 기자
제주 ‘용천수’가 여름철 피서지로 떠오르고 있다. 용천수는 화산섬 제주도의 지하에 유입된 빗물이 지하수를 형성해 용암류의 빈틈을 따라 흐르다가 그 틈이 지표로 노출된 지역이나 용암류의 끝부분인 해안가 등에서 지표면으로 솟아나는 물을 가리킨다. 제주에서는 ‘산물’이라고 부른다. ‘살아 샘솟는 물’ 또는 ‘산에서 나는 물’이라는 뜻이다.
제주도의 마을은 용천수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용천수를 이용하기 위해 물허벅, 물구덕, 물팡 등 제주 사람들의 물 이용 문화와 세시풍속 등이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용천수에는 제주의 삶과 문화가 깃들어 있다는 얘기다.
1930년 제주시 애월읍 중엄리 마을 주민들이 해안 바위를 발파해서 용천수 ‘새물’을 식수원으로 활용했다. 수량이 풍부해 지금도 용천수가 바다로 흐른다. 허호준 기자
용천수가 식수원과 생활·농업용수로 쓰인 것은 1970년대까지다. 일제강점기인 1920~1930년대에 용천수를 이용한 간이수도가 처음 가설되고 1960년대 고지대 용천수 개발사업과 어승생 저수지 개발사업 등 제주도의 물 문제 해결에 용천수가 수자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88년 제주도의 상수도 보급률이 99.9%에 이른 이후에는 용천수를 식수로 이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여름철 수영장이나 냉수욕, 가뭄 때 농업용수 등의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한라산 윗세오름 부근 해발 1650m 지점에 있는 노루샘. 허호준 기자
용천수 냉수욕장도 제각각이다. 사수동 홀캐물과 이호동 백포노천탕은 탈의시설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입장료도 받는다. 서귀포시 소낭머리 노천탕은 주변 바다와 어우러진 경관이 빼어나다. 용천수탕이 바다와 이어져 담수와 해수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예래동 논짓물 담수풀장도 입소문이 났다. 인기가 많은 한림읍 옹포천의 야외 수영장은 알고 보면 용천수를 끌어다가 만든 수영장이다.
제주연구원 제주지하수연구센터가 지난 1월 제주도의 의뢰를 받아 제출한 ‘제주도 용천수 관리계획·보완계획’ 수립 용역 보고서를 보면, 2020년 말 기준 용천수는 646곳이다. 이 중 상수원으로 이용되는 용천수는 17곳, 생활용 99곳, 농업용 44곳, 소화용 2곳이다. 앞서 제주도가 처음으로 용천수 현황을 조사한 1999년 조사에 견주면 20년 사이 용천수 265곳이 사라졌다.
제주 서귀포시 가파도에도 용천수가 난다. 사진은 가파도 용천수 돈물깍. 허호준 기자
박원배 제주지하수연구센터장은 “용천수는 제주인들의 삶의 원천이며 제주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며 “용천수는 땅속을 흐르던 지하수가 지표로 솟아나는 물이기 때문에 제주도 모든 지역에 분포하는 용천수의 현황을 파악하는 것은 지하수 조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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