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도쿄 4·3모임 조동현 회장
“20여년 동안 해마다 4·3 행사를 열었으니 최소한 아는 척은 합니다. 과거에는 일본 동포들이 ‘4·3’이라고 하면 제주사람들 일로 치부했는데 이제는 달라졌어요. 제주에서 수많이 사람이 희생된 4·3이라는 사건이 있었다는 정도는 알아요. 재일동포가 4·3을 모른다면 오히려 부끄럽게 여길 정도가 됐어요. 일본 지식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졌고요. 그것이 우리 성과가 아닐까요.”
지난 달 20일 일본 도쿄 아라카와구 제주4·3항쟁 제74주년 추도식 및 콘서트장에서 만난 ‘제주도 4·3사건을 생각하는 모임·도쿄’ (이하 도쿄 4·3모임) 회장 조동현(74)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로 중단된 지 3년 만에 열린 4·3 추도식은 나카노 도시오 도쿄외국어대 명예교수의 ‘제주도 4·3항쟁과 일본의 전후사’ 강연과 재일동포 가수 박보의 공연으로 꾸며졌다. 애초 도쿄 4·3모임은 코로나19를 고려해 250여석을 마련했으나 350여명이 행사장을 찾았다. 도쿄 4·3모임이 해마다 4·3추도식을 겸해 여는 강연과 콘서트장에는 재일동포보다 일본인들이 더 많이 찾는다.
조 회장은 일본의 조선대를 나와 <조선신보> 기자로 13년 동안 활동할 때만 해도 4·3을 잘 몰랐다고 한다. 그가 4·3운동에 뛰어든 결정적인 계기는 재일동포 소설가 김석범 선생과의 만남이었다.
“도쿄에서 4·3 50주년을 1년 앞둔 1997년 김석범 선생 요청으로 10여명 정도 모였어요. 이 자리에서 선생이 ‘4·3 40주년 행사도 했는데 왜 이것을 발전시키지 못하느냐’며 질책했어요. 선생의 4·3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애정을 보면서 선생에게 인간적으로 반했습니다.”
앞서 40주년은 1988년 도쿄에서 김석범 선생과 유학생이었던 강창일 전 주일대사, 시인 김명식씨 등의 주도로 공개적인 추도식을 연 바 있다.
도쿄 4·3모임은 이렇게 50주년 때인 1998년에 결성됐다. 모임 실행위원 20여명 중 절반 이상이 일본인 학자와 평화운동가들이다. 조 회장은 “김석범 선생과의 만남 이후 <화산도>와 <까마귀의 죽음> 등 선생님 작품을 찾아 읽으며 4·3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됐다”고 했다.
“처음 4·3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4·3은 제주만의 문제라는 인식이 강했죠. 그래서 4·3을 대중화시켜 일본 사회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도쿄 4·3행사가 강연회와 함께 문화예술적인 부분을 접목한 이유입니다. 재일동포만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찾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1997년 김석범 작가 만남 계기로
20여년 도쿄에서 4·3 행사 꾸려
4·3 대중화 위해 강연·콘서트 행사
“제주, 통일 상징으로 만드는 운동을” 기자 생활 뒤 꼬치구이 가게 열어 성공
“100여명 직원도 4·3 행사에 큰 관심” 도쿄의 4·3 대중화 운동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조 회장은 말했다.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출신인 그는 4·3 당시 어머니가 갓난아기였던 자신을 안은 채 유치장에 수감됐다가 풀려난 뒤 목포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왔다. 그는 “어머니는 나를 살리기 위해 일본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 사는 것 자체가 4·3의 영향이다”고 말했다.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도쿄의 우에노에 연 꼬치구이 가게가 입소문을 타면서 6호점까지 내고 종업원도 100여명에 이를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그는 “지금은 가게 종업원들도 4·3을 안다. 4·3 행사를 기획하기도 전에 관심을 갖고 행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누가 참가하는지 묻기도 한다”고 웃었다.
도쿄 4·3모임이 여는 4·3 행사가 늘 참가자들로 붐비는 것은 신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도쿄 4·3모임 행사는 가볼 만하다는 신뢰가 20여년 동안 쌓여왔어요. 참석자들이 감동할 강연이나 문화예술공연을 준비하려고 노력해온 덕분이죠. 이제는 일본인들도 4·3 행사에 참석하면 좋은 강연과 공연을 듣고 볼 수 있다는 믿음이 쌓였어요.”
그는 4·3의 세대 전승을 위해서는 ‘대중화’가 필요하다면서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강조했다. “제주에서의 4·3운동이 초심으로 돌아가서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분석해서 일본에 있는 우리에게 가르쳐줘야 해요. 그리고 이제는 ‘항쟁 지도부’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해야죠. 언제까지나 4·3기념관에 누워있는 백비에 이름을 적어놓지도, 세우지도 못한 채 이런 식으로 갈 수는 없잖아요.” 그는 4·3운동의 방향을 언급하면서도 “제주도를 남북이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통일의 상징으로 만드는 운동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우리는 행사를 1년 전부터 준비합니다. 올해 행사를 하면서도 벌써 머릿속에서는 내년 4·3행사를 어떤 방향으로 준비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조동현 제주도 4·3사건을 생각하는 모임·도쿄 회장이 일본에서의 4·3 대중화운동에 대해 말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지난 20일 일본 도쿄 아라카와구 한 호텔에서 열린 ‘제주4·3항쟁 제74주년 추도식’에서 재일동포 가수 박보가 공연을 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20여년 도쿄에서 4·3 행사 꾸려
4·3 대중화 위해 강연·콘서트 행사
“제주, 통일 상징으로 만드는 운동을” 기자 생활 뒤 꼬치구이 가게 열어 성공
“100여명 직원도 4·3 행사에 큰 관심” 도쿄의 4·3 대중화 운동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조 회장은 말했다.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출신인 그는 4·3 당시 어머니가 갓난아기였던 자신을 안은 채 유치장에 수감됐다가 풀려난 뒤 목포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왔다. 그는 “어머니는 나를 살리기 위해 일본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 사는 것 자체가 4·3의 영향이다”고 말했다.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도쿄의 우에노에 연 꼬치구이 가게가 입소문을 타면서 6호점까지 내고 종업원도 100여명에 이를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그는 “지금은 가게 종업원들도 4·3을 안다. 4·3 행사를 기획하기도 전에 관심을 갖고 행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누가 참가하는지 묻기도 한다”고 웃었다.
제주4·3항쟁 제74주년 추도식에서 나카노 도시오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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