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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도쿄서 열린 제주4·3추도식…“이제랑 오십서”

등록 2022-06-22 15:38수정 2022-06-22 16:12

20일 일본 아라카와에서 4·3 강연과 콘서트 열려
250석 준비에 350명 찾아…참석자들 대부분 일본인
참석 일본인 “재일제주인 피해실태 조사도 필요”
강창일 주일대사, 40년 전 유학생활 때 4·3행사 소개
지난 2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주4·3 추도식 및 콘서트가 많은 일본인이 참가해 성황리에 치러졌다. 허호준 기자
지난 2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주4·3 추도식 및 콘서트가 많은 일본인이 참가해 성황리에 치러졌다. 허호준 기자

“도대체 누가 도민을 죽이라 했는가. 미쳐 돌아가던 세월이었다. 바닷속에 건져낸 당신들의 목소리가 74년이 지난 지금 하늘에 울리고 있다. 잠들지 못하는 영혼들이여. 떠돌던 세월이여. 끝내 목숨과 바꾼 고귀한 마음들이여. 한라의 바람의 신 여기로 와 주세요.”

지난 20일 오후 6시 일본 도쿄 아라카와구 아트호텔 닛포리 렁우드에서 열린 ‘제주4·3항쟁 제74주년 기념 강연 및 추도식’에서 재일동포 김순애씨의 추모시가 일본어로 추모식장에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코로나19로 3년 만에 ‘제주도4·3사건을 생각하는모임·도쿄’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는 관람석을 가득 메운 채 3시간 넘게 진행됐다. 주최 쪽은 애초 250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350여명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추도식에는 고희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등 재단 관계자를 비롯해 4·3유족회와 제주도청 관계자 등도 참석했다.

해마다 도쿄에서 열리는 4·3추도식은 일본 사회에 4·3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조동현 ‘제주도4·3사건을 생각하는 모임’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지난 20여년 동안 해마다 개최해온 4·3 행사가 코로나19로 3년 만여 열리게 됐다. 해방공간 속에서 분단에 반대하고 조국의 통일을 갈망하며 일어선 항쟁 지도부는 여전히 희생자에서 배제됐다. 미국의 사죄도 받아내지 못한 과제도 있다”며 “희생자에 대한 보상과 수형자의 명예회복 등이 이뤄져 4·3이 올바른 문제 해결의 길에 들어섰음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일동포 3세 가수 박보(왼쪽)와 하영수씨가 4·3추모 공연을 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재일동포 3세 가수 박보(왼쪽)와 하영수씨가 4·3추모 공연을 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이어진 강연에서는 나카노 도시오 도쿄외국어대 명예교수가 ‘제주도 4·3 항쟁과 일본의 전후사’라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 “전후 일본의 역사를 간과해서는 4·3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에서 제주4·3을 고민하는 일은 4·3 희생자를 기억하고 정의를 요구하는 일이며, 4·3 관련 재일동포들의 삶의 존엄성을 생각하고 보장하는 일이다. 또한 일본의 식민지주의 역사의 책임을 묻는 것이며, 아시아에서 계속되는 식민주의의 현재를 문제화하고 탈식민주의의 공정한 세계를 실현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강창일 주일한국대사가 대사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에서 열린 4·3행사에 참석했다. 제주 출신인 강 대사는 일본 유학 시절 4·3 행사에 주도적으로 참석했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강 대사는 “당시 재일동포 소설가와 시인인 김석범·김시종 선생을 통해 일본인들이 4·3을 알고 있었다”며 “유학생활을 하던 1988년 40주년을 맞아 도쿄에서 4·3행사를 추진했다.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운동은 사실상 일본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강 대사는 “4·3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운동은 세계적으로 가장 모범적인 과거사 청산운동이자 평화와 상생을 위한 운동이다.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고 말했다.

20일 일본 아라카와에서 열린 제주4·3 추도식 및 콘서트에서 참가자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허호준 기자
20일 일본 아라카와에서 열린 제주4·3 추도식 및 콘서트에서 참가자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허호준 기자

이어진 2부에서는 재일동포 3세 가수 박보의 무대로 꾸며졌다. 그는 이날 처음으로 만든 4·3 노래를 소개했다. 흐느끼며 거친 바다에서 나오는 듯한 노래 ‘칸타타 제주4·3의 외침’을 부르기 시작하자 관객들은 침묵 속에 무대를 바라봤다.

“뼈가 흙투성이가 되어 조용히 말하기 시작한다. 깊은 슬픔은 대지를 들이마시듯 습기 찬 땅속에서 소생하려 하고 있다.…고치 의지허멍 살아가게마씀. 경허당 정들믄 너영 고치 살고정 해. 마음터놩 말합써게. 다 이해헐꺼우다.(함께 의지하며 살아가요. 그러다 정들면 당신과 함께 살고 싶어. 다 이해할 거야).

추도식에 참가자들은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공연장에서 만난 고바야시 유키에(65)는 “2년 전 대학에서 한국어 학습 강좌를 받으며 4·3 영화 ‘지슬’을 통해 제주도 4·3사건을 알게 됐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운동이 많은 성과를 냈다고 하는데 재일 제주인들의 피해실태에 대해서도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재일동포 문제에 관해 활동하는 일본인 친구로부터 4·3추도식 행사를 알게 돼 처음 참석했다”고 말했다. ‘평화헌법을 지키는 아라카와구 연구회’에서 활동하는 오시오 타케시(75)는 “출판사 신간사를 운영하는 고이삼 선생이 주도하는 연구회에 갔다가 4·3을 알게 돼 추도식에 참석했는데 코로나 시기에도 많은 일본인이 참석한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하토리 마리(75)도 “행사 주최 쪽 관계자들을 알고 있어서 여러 차례 4·3추도식 행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착실히 진행되는 것을 보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행사 뒤 이어진 뒤풀이에는 소설 <화산도>를 쓴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96)씨가 찾아와 강창일 대사와 고희범 재산 이사장 등을 만나고 행사 관계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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