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제성마을 왕벚나무 대책위원회와 시민모임 낭싱그레가게2가 4일 오전 제주시청 앞에서 도로 확장에 따른 왕벚나무 벌채를 규탄하며 항의 집회를 열었다. 허호준 기자
“40여년 전 이주할 당시 마을이 너무 삭막해서 심었어요. 그런 역사가 깊은 나무를 하루아침에 잘라내는 게 말이 됩니까?”
4일 오전 제주시청 앞에서 만난 제주시 제성마을 주민 송아무개씨가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제주시청 앞에서는 제성마을 왕벚나무 대책위원회와 ‘시민모임 낭싱그레가게2’가 ‘제성마을 왕벚나무 살려내라’는 주제로 공동집회를 열고, 안동우 제주시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할머니로 분장한 시민이 시위를 벌이는 등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제성마을 주민들의 희생으로 제주 발전의 토대가 마련됐다. 개발의 혜택을 누린 사람들이 마을의 희생에 감사를 전하지는 못할망정 또다시 눈물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며 제주시장의 사과와 도로 확장 철회를 촉구했다.
제주참여환경연대와 제주환경운동연합도 최근 제주시의 정책을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도로를 넓히기 위해 나무를 자르고 대중교통을 활성화한다고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도로 확장에 골몰하는 무개념 행정이 제주를 벼랑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며 “도로를 넓히려고 나무를 자르는 도시에 미래가 있느냐”고 비판했다.
제주시가 신광교차로~도두 간 도로구조 개선사업을 하면서 마을주민들이 40여년 전 심어놓은 왕벚나무를 잘라내면서 주민들의 싸움이 시작됐다. 지난해 8월 도로 공사 과정에서 수령 40년이 훨씬 넘은 왕벚나무 4그루가 잘려나가자 제성마을회는 임시총회를 열고 제주시에 보존을 요구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지난 3월15일 또다시 8그루의 왕벚나무가 잘려나가자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주민들은 제주시청을 찾아 “주민들의 반대에도 하루 만에 40년 이상 자란 왕벚나무를 어떻게 다 베어낼 수 있느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도로 확장 이전 제주시 제성마을 왕벚나무들(위)과 도로 확장 이후 잘려나간 왕벚나무들(아래) 다음 로드뷰, 제주참여환경연대 제공
제성마을의 역사는 일제의 식민지 수탈사, 해방 후 제주 개발사와 궤를 같이 한다. 일제 강점 시절인 1941년 일본군은 다끄네에서 몰래물(사수동)에 이르는 곳에 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을 짓는다며 주민들을 쫓아냈다. 주민들은 섯동네 도두봉과 가까운 곳에 모여들어 살면서 오늘의 신사수동(새몰래물)이 됐다. 이들 주민은 제주공항이 3차례에 걸쳐 확장되는 과정에서 쫓겨났다. 1980년대에는 신사수동 인근에 도두하수처리장을 만들면서 다시 이주해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신사수동에 살던 주민들 가운데 16가구가 1981년 제성마을로 옮겨왔다. 당시 상하수도가 없고 자갈밭이던 벌판에 16가구 주민들이 맨손으로 일궈 마련한 보금자리가 지금의 제성마을이다.
주민들은 벌판이었던 마을에 나무를 심자고 했다. “당시 마을주민들이 회의를 열고 마을이 너무 삭막해서 나무를 심자고 의견을 모으고, 직접 한라산에 가서 어른 키만한 왕벚나무를 캐온 뒤 심었어요.” 송씨는 “가로수보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온 나무까지 베어냈다”며 “왕벚나무들은 우리 마을의 역사나 다름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주민은 “주민들이 시에다 왕벚나무 역사가 있는 만큼 베어내지 말라고 해서 벌채를 하지 않기로 해놓고 갑자기 베어내 버렸다”며 분개했다. 일부 주민들은 베어낸 왕벚나무 밑동에서 새싹이 올라오자 새싹을 집에 갖고 가 화단에 옮겨심기도 했다. 이들은 오늘 17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공동집회를 열 계획이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