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지석. 허호준 기자
제주지법에 ‘제주4·3사건 재심 전담재판부’가 신설된다. 일선 법원에서 과거사 사건을 처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제주지법은 “4·3사건 재심과 관련해 예상되는 사건 수와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재심사건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 4·3 재심사건을 전담할 형사합의부를 신설했다”며 “신설되는 전담재판부 운영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제주4·3 재심사건을 적법하고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21일 밝혔다. 전담재판부는 배석판사 4명을 배치하고 형사합의4-1부, 4-2부 등 2개 재판부로 운영하게 된다. 재판장은 지난 2020년부터 올해까지 4·3 군법회의와 일반재판 재심사건을 담당했던 장찬수 부장판사가 맡는다.
앞서 광주고검 산하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단장 이제관 서울고검 검사)은 지난 10일 희생자 20명에 대한 직권재심을 청구했으며, 올해 안에 4·3 당시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에 등재된 2530명의 직권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제주지법은 일반재판 희생자 등을 포함하면 올해 안에 최소한 3천명 이상의 재심 청구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은 “재판장을 맡은 장 부장판사가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4·3 관련 재심사건을 담당해 4·3사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재심사건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처리할 적임자로 판단해 재판장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장 부장판사는 4·3 재심사건을 다루면서 관련 서적을 두루 섭렵하고 여러 전문가와 유족들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장 부장판사는 지난해 3월 4·3사건 재심청구 소송에서 우리나라 사법사상 유례가 없는 350여명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오늘 피고인들은 대한민국 법원을 통해 법적으로 당당하게 무죄를 선고받았다. 국가가 완전한 정체성을 갖지 못했을 때 피고인들은 목숨마저 빼앗겼고, 자녀들은 연좌제에 갇혔다. 지금까지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삶을 살아냈는지, 과연 국가는 무엇을 위해, 그리고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몇번을 곱씹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장 부장판사는 이어 “오늘의 (무죄) 선고로 피고인들과 그 유족들에게 덧씌워진 굴레가 벗겨지고 고인이 된 피고인들이 저승에서라도 오른쪽 왼쪽을 따지지 않고 낭푼(양푼)에 담은 지실밥(감자밥)에 마농지(마늘장아찌)뿐인 밥상이라도 그리운 사람과 마음 편하게 둘러앉아 정을 나누는 날이 되기를, 살아남은 우리는 이러한 일이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겨 유족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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