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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AS] 제주 ‘오픈카’ 사망사고…검찰은 왜 ‘살인’ 혐의 고집했을까

등록 2021-12-21 10:03수정 2021-12-21 10:39

예비적 공소사실로 ‘위험운전치사’ 추가 안해
법원, 사실상 무죄 판결…항소심서 변경할 듯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2019년 제주에서 렌터카를 타고 운전하다 일어난 이른바 ‘오픈카 사망사고’의 운전자가 최근 ‘살인’ 혐의를 벗었다. 조수석에 탔던 여자친구는 숨지고 운전자인 남자친구만 무사했던 이 사고를 두고 검찰은 ‘살인’을, 변호인은 ‘사고’를 주장하며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는데, 법원이 일단 변호인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바로 항소 뜻을 밝혔다. 이렇듯 유무죄 논란이 있는 경우 ‘무죄일 경우엔 더 낮은 죄목으로라도 처벌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보통인데, 살인혐의 유죄를 고수한 검찰은 이 사건에서는 이런 절차를 건너뛰어 ‘뒷말’이 나오고 있다.

마지막 이별여행 된 300일 여행

제주지법 형사2부(재판장 장찬수)는 지난 16일 살인과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김아무개(33)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160시간과 준법운전강의 수강 40시간을 명했다. 재판부는 음주운전 혐의만 유죄로 판단하고, 살인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사건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9년 11월10일 새벽 1시께가 조금 넘은 시각, 미국 포드사의 머스탱이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의 한적한 편도 2차선 도로를 질주했다. 운전자 김씨가 운전한 렌터카의 조수석에는 여자친구 조아무개(당시 28)씨가 있었다. 같은 해 1월 만난 이들은 제주로 300일 여행을 왔고, 지붕이 열리는 컨버터블형인 ‘오픈카’를 빌려 제주를 여행 중이었다. 제한속도 50㎞ 도로에서 머스탱은 시속 103㎞ 속도로 달리다 굽은 구간이 나타나자 72.3㎞로 감속한 뒤 다시 114.8㎞로 급가속했다.

차는 굽은 도로 오른쪽 인도로 돌진해 연석과 인도 옆 돌담, 2차로에 주차돼 있던 경운기를 잇달아 들이받았다. 차량의 앞부분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구겨졌다. 안전띠를 맨 김씨는 별로 다치지 않았지만, 안전띠를 매지 않은 조씨는 차 밖으로 튕겨 나가 크게 다쳐 10여차례 대수술을 받는 등 치료를 받았지만 9개월여만인 지난해 8월23일 숨졌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안전띠 미착용 확인 뒤 급가속

사고 당시 운전자 김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운전면허 취소 대상인 0.118%였다. 사고 전날 오후 4시께 제주에 도착한 이들은 렌터카를 빌려 관광지 몇곳을 들른 뒤 오후 8시40분께 숙소에서 멀지 않은 해수욕장에서 밤 11시50분께까지 술을 마셨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김씨는 여자친구 조씨에게 헤어지자고 요구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김씨는 그 전에도 카카오톡 등으로 이별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날 0시55분께 숙소에 도착한 뒤 조씨가 “라면을 먹고 싶다”고 하자, 김씨가 운전하고 조씨는 조수석에 동승해 길을 나섰다. 김씨는 달리는 차에서 안전벨트 미착용 경고음이 울리자 조씨에게 “안전벨트 안했네”라고 했고, 조씨는 “응”이라고 답했다. 이어 김씨는 속도를 높였고 질주하다 사고로 이어졌다.

사고 직전 자세한 상황은 차량 블랙박스와 에어백컨트롤모듈에 기록됐다. 특히 에어백컨트롤모듈은 심한 충격으로 파손됐지만 경찰은 경기도에 있는 판매업체까지 찾아가 관련 정보를 복원할 수 있었고, 제한속도 두배를 넘는 과속과 급가속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국과수 쪽은 ‘안전벨트 안했네’ 한 뒤 가속됐다고 하고, 도로교통안전공단에서는 (급가속한) 운전자의 개인적인 의도는 분석이 불가능하다고 회신했다”고 전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위험운전치상 혐의와 음주운전 혐의로 김씨를 검찰에 넘겼다. 위험운전치상은 ‘음주 또는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여 사람을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 적용되는 죄목으로 징역 1년 이상 15년 이하, 또는 벌금 1천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 처벌을 받는다.

검찰은 “살인” 피고인은 “사고”

경찰에서 넘어온 이 사고를 수사하던 검찰은 조씨가 숨지지 지난 4월28일 운전자인 김씨를 ‘위험운전치사’가 아닌 ’살인’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카카오톡 문자와 블랙박스 녹음파일 내용 등을 분석한 결과, 이별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조씨에게 불만을 품은 김씨가 고의로 사고를 낸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검찰은 특히 블랙박스에서 확인된 정황에 주목했다. 조수석 안전벨트 미착용 경고음이 울린 뒤 “안전벨트 안했네”라고 물은 뒤 갑자기 급가속해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검찰은 법정에서 ‘무리하게 급가속을 하게 될 경우 2차로에 주차된 지역 주민들의 차량을 충격하거나 인도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지붕이 열려 있는 차량의 조수석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고 있던 피해자가 급가속으로 인한 교통사고 발생 시 차량 밖으로 튕겨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급가속해 인도 쪽으로 돌진해 조씨를 숨지게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씨 변호인 쪽은 재판과정에서 “안전벨트를 안했다는 말은 주의를 환기하는 말로 봐야 하지 살해 동기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블랙박스가 녹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은폐하지 않고 살해할 이유가 전혀 없다. 검찰은 대화 내용 녹음본과 블랙박스 증거 중 서로 다투는 내용만 발췌 인용하며 살인으로 무리하게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보면 살인죄도 직접 증거 없이 간접 증거만으로도 유무죄 판결을 내릴 수도 있지만, 이번 사건에 나타난 간접 증거들은 불충분한 면들이 있다”며 “사고 원인이 된 전복 등 큰 사고가 발생하면 피고인도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런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범행을 저지를 만한 동기는 부족해 보인다”고 무죄선고 이유를 밝혔다. “사고 발생 도로에는 가로등이 없었고, 술에 취해 인지력이 저하된 것으로 보이는 피고인의 상태를 고려하면 검찰 쪽 주장대로 피고인이 현장에서 바로 범행을 계획했다고 판단하기에도 무리가 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제주지방검찰청.
제주지방검찰청.

검찰 ‘살인’ 혐의만 고집

문제는 검찰이 김씨 살인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위험운전치사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하지 않은 점이다. 예비적 공소사실은 검찰이 주위적 공소사실(살인혐의)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추가하는 공소사실이다. 음주·약물 운전으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 적용되는 위험운전치사죄의 법정형은 무기 또는 징역 3년 이상으로, 사형 또는 무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는 형법의 살인죄보다는 낮지만 가볍지 않은 수준의 처벌을 받는다.

재판부는 재판과정에서 검찰에 여러차례 김씨 공소장을 변경해 예비적 공소사실을 추가할 것을 요청했으나 검찰은 살인혐의 적용만을 고수했다. 결국 검찰이 공소장 변경을 통해 위험운전치사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했다면 살인혐의가 무죄가 되더라도 음주·약물 운전에 따른 사망사고 책임을 물을 수 있었지만, 검찰의 거부로 처벌은 무산됐다. 재판부는 “김씨의 위험한 운전으로 동승자가 목숨을 잃은 점이 충분히 인정된다. 그러나 기소되지 않은 혐의에 대해 재판부가 평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문영권 제주지검 인권보호관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당연히 항소한다. 증거관계와 법리를 검토한 결과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확신했다. 유족도 그런 시각이다. 예비적 공소사실은 (살인의) 고의가 없다는 얘기다. 우리는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믿는데, 그렇게 자신 없이 기소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항소심에서도 살인의 고의성은 충분히 다퉈볼 만하다. 위험운전치사 혐의를 예비적으로 공소장을 변경하는 데 대해서도 좀더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보통 재판부가 (예비적 공소사실을 추가하라는) 공소장 변경을 얘기하는 건 무죄를 쓰겠다는 신호다. 검찰이 아무리 유죄를 확신한다 하더라도 결국 판단은 판사가 하는 만큼, 재판부가 그런 뜻을 보였다면 예비적 공소사실을 추가하는 게 맞다”며 “다만 항소심까지 공소장 변경이 가능한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에서는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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