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술을 마신 채 오픈카를 몰다 사고를 내 조수석에 있던 여자 친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오픈카 사망사고’ 운전자가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제주지법 형사2부(재판장 장찬수)는 16일 살인 및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ㄱ(34)씨의 선고 공판에서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또 160시간의 사회봉사와 함께 40시간의 준법운전 강의를 수강할 것도 명령했다.
ㄱ씨는 2019년 11월10일 새벽 1시20분께 술에 취한 상태로 렌터카를 운전하다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의 한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내 당시 조수석에 타고 있던 여자 친구 ㄴ씨를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사고 당시 ㄱ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118%였으며 시속 114㎞로 달리다 도로변 연석에 부딪친 뒤 세워져 있던 경운기를 들이받았다. 사고 차는 이른바 ‘오픈카’로 불리는 컨버터블형 차로, 당시 조수석에 있던 ㄴ씨는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다가 충격으로 밖으로 튕겨 나가 크게 다쳐 수개월 동안 치료를 받다 2020년 8월 숨졌다.
경찰은 애초 ㄱ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위험운전치상 및 음주운전 혐의를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그러나 이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ㄴ씨가 숨지자 올해 4월28일 ‘위험운전치사’가 아닌 ‘살인’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검찰은 카카오톡 문자와 블랙박스 녹음 파일 내용 등을 바탕으로 ㄱ씨가 고의로 숨지게 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사고 차 블랙박스에서 안전벨트 미착용 경고음이 울리자 ㄱ씨가 ㄴ씨에게 “안전벨트 안 맸네”라고 말한 뒤 차 속도를 올리다 사고가 난 점 등을 확인해 고의 사고 증거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보면 살인죄도 직접 증거 없이 간접 증거만으로도 유무죄 판결을 내릴 수도 있지만 이번 사건에 나타난 간접 증거들은 불충분한 면들이 있다”며 “사고 원인이 된 전복 등 큰 사고가 발생하면 피고인도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런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범행을 저지를 만한 동기는 부족해 보인다”고 무죄선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또 “사고 발생 도로에는 가로등이 없었고, 술에 취해 인지력이 저하된 것으로 보이는 피고인의 상태를 고려하면 검찰 쪽 주장대로 피고인이 현장에서 바로 범행을 계획했다고 판단하기에도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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