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제주시 이도동 제주칼호텔 앞에서 제주관광서비스노조 칼호텔지부 노조원이 한진그룹의 제주칼호텔 매각 방침에 반대하며 손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허호준 기자
“제겐 청춘과도 같은 곳이에요. 갑자기 매각한다는 얘기를 밖에서 듣고 혼란스럽네요.”
19일 오후 제주시 제주칼호텔에서 만난 한혜숙(45·조리팀 코디네이터)씨는 지난달 호텔 매각 소식을 듣고 분노와 함께 허탈감이 밀려왔다고 했다. 23년째 근무 중인 한씨는 “20살 때 호텔 실습 뒤로 입사해 지금까지 열심히 일만 해왔다”며 착잡해했다.
코로나19에도 불황을 모르는 제주에서 제주칼호텔은 오랜 시간 제주 관광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이곳은 1974년 세워진 제주시 원도심 유일의 19층 특급호텔로 2014년 제주롯데시티호텔(22층)이 들어서기 전까지 40년 동안 최고층의 자리를 지켜왔다.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이 제주칼호텔 매각을 알린 것은 지난달 1일이다. 한진칼이 매각을 위해 서울의 부동산개발회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유는 재무 건전성 악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대상은 제주칼호텔 터 1만2525㎡와 연면적 3만8661㎡의 건물이다. 그곳엔 정규직 150명과 외주 인력 90명, 카지노 직원 60명 등 모두 300여명이 근무한다. 상당수가 장기근속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 간 사전 논의가 없었던 탓에 직원들은 동요하고 있다. 강준호(50) 노조 사무국장은 “96년 입사 때만 해도 대기업에 근무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회사가 망한 것도 아닌데 갑작스러운 매각 소식에 배신감이 크다”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한식조리 업무를 맡고 있다. 입사 9년차인 신덕규(33)씨는 제주 밖에서 왔다. 관광업계에서 일하고 싶어 제주대로 진학했고, 대학 4학년 때 입사했다. 신씨는 “취업난이 심한 시기 제주도에서 제일가는 칼호텔에 취업한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2년 전 결혼도 하고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서 올해는 집을 사서 이사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객실팀 프런트 당직 지배인을 맡는 강상문(49)씨는 “도내에 여러 특급호텔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제주칼호텔은 직원들에게 안정적이었고, 평판도 좋았다. 초등학교 2, 4학년 1남1녀가 있는데 매각 소식에 허탈감이 크다”고 말했다.
제주지역의 특급호텔들은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사태에도 사정이 나쁘지 않다. 변영근 제주도 관광정책과장은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이지만 도내 특급호텔들은 경영이 안정적이다. 거리두기 3단계에서 전체 객실 수의 75% 안에서 투숙객을 받도록 했지만, 성수기에는 이를 해제해달라고 할 정도였다. 현재 특급호텔들의 숙박률은 70~80% 정도 된다”고 말했다.
제주관광서비스노조 칼호텔지부는 매각에 맞서고 있다. 지난 11일부터 매각 반대 서명운동에 나서고, 제주도와 도의회에도 고용 승계 등 지원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서승환(54) 노조 위원장은 “직장 내 젊은 직원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고 암담하다”며 “한진그룹은 1972년부터 호텔과 관광, 항공과 물류, 먹는 샘물 등 제주를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인 만큼 제주지역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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