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시 송악산 해안절벽 일부가 붕괴해 갱도진지 입구를 막고 있다. 허호준 기자
제주 송악산 해안절벽이 진동과 풍화·침식작용 등으로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14일 오전 제주 서남부의 송악산 주변 주차장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안덕면 사계리에서 송악산으로 이어지는 제주올레 10코스에도 삼삼오오 도보여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졌지만, 송악산 절벽 바로 앞에는 출입금지 팻말이 세워져 있다. 모래층과 화산쇄설물(송이)로 이뤄진 송악산 절벽의 붕괴가 갈수록 심해져 위험하기 때문이다. 출입금지를 알리는 말뚝 주변에는 바다에서 밀려온 해양 쓰레기들이 수북했다. 송악산 해안절벽에는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1945년 일제가 연합군 상륙을 막기 위해 도민들을 강제동원해 해군 특공기지용으로 파놓은 갱도진지(인공동굴) 17곳이 남아 있다.
이날 현장에서는 20~30여m 높이의 절벽이 허물어져 일부 갱도진지의 입구를 막아버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절벽 한 부분이 붕괴해 움푹 파였고, 해안가에는 부서진 바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마라도행 유람선이 뜨는 산이수동 선착장 인근부터 서쪽으로 해안절벽까지 곳곳에 크고 작은 퇴적층이 붕괴했고, 최근 빠른 속도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 서귀포시 송악산 해안절벽 주변에는 바다에서 밀려온 해양 쓰레기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허호준 기자
제주도는 진동 등으로 인한 붕괴 위험을 줄이고자 지난 2010년 6월부터 송악산 차량 진입을 통제해왔다. 하지만 2013년 40여m 높이 해안절벽이 무너졌고, 상부 산책로와 난간도 무너져 송악산 정상으로 향하는 우회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결국 지난 3월 해안절벽이 무너지면서 갱도진지 한곳 입구가 막혔다.
한 지질전문가는 “태풍이나 풍화·침식작용 등 자연적인 현상이어서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만, 절벽을 구성하는 모래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파도 에너지를 줄이는 저감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는 “차량진입 금지 만으로는 부족하다. 관광객 출입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제주도 세계자연유산본부는 내년 2억원의 예산을 들여 송악산 중장기 보전방안 용역을 맡길 예정이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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