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수형 생존자와 유족들이 7일 제주지방법원에서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재판이 끝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제주4·3 수형 생존자와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제주지방법원 제2민사부(재판장 류호중)는 7일 제주4·3 수형 생존자와 유족 39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사건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대신 원고 쪽이 형사보상금을 받은 점 등을 고려해 대규모 손해배상액은 받아들이지 않고 대부분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1948년 가을부터 1949년 여름까지 구속영장 없이 불법구금과 폭행, 고문 등의 가혹 행위가 있었고 공소 제기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유죄 판결을 받아 장기간 수감 생활을 했던 만큼 국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손해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에서 희생자 위자료 산정을 고려해 희생자 본인 1억원, 배우자 5천만원, 자녀 1천만원으로 정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가혹 행위 등으로 후유장애, 70년 동안의 폭도, 범죄자 낙인 등 정신적 고통, 명예훼손 등을 입었더라도 별개의 불법행위라고 볼 수 없다. 또 일부 원고의 주택방화, 불법적 사찰 등은 주장만으로는 증거가 부족해 인정되지 않는다”며 “구금 기간이 적지 않으나 구금 기간에 비례한 형사보상금이 지급돼 어느 정도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이미 받은 형사보상금을 공제하도록 해 형사보상금이 1억원이 되지 않는 원고 1명을 제외하면 원고 대부분은 손해배상액이 인정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제주4·3 당시의 불법행위는 인정했으면서도 사건 이후 70여년 동안 이어진 희생자들의 정신적 고통이나 사찰 등은 ‘별개의 불법행위’가 아니라거나 증거가 부족으로 판단해 논란이 일 전망이다. 한 유족은 “4·3 이후의 불법행위를 4·3 당시의 불법행위로 포괄적으로 해석하면 사건 이후의 인권침해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제주4·3 당시 불법적인 군사재판을 받고 수형 생활을 한 양근방(90)씨 등 수형 생존자와 유족 등 39명은 불법구금과 고문에 따른 정신적 고통과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모두 124억18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제기한 바 있다. 이번 판결은 2019년 11월29일 손해배상을 제기한 이후 1년 10개월 만에 나왔다. 이들은 소장에서 위법한 구금과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 구금 과정에서의 자녀 사망, 출소 이후 전과자로 살아야 했던 명예훼손 등을 고려해 원고별로 3억~15억원의 위자료를 산정했다.
수형 생존자들은 2017년 4월 4·3 당시 군사재판에서 기소된 혐의가 억울하게 씌워졌다며 재심 청구소송을 제기해 2019년 1월 공소기각 결정이 나자 형사보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같은 해 8월 1인당 8천만~15억여원 등 모두 53억4천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한 바 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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