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25살로 산화한 고 양용찬 열사. 양용찬열사기념사업회 제공
“나는 우리의 살과 뼈를 갉아먹으며 노리개로 만드는 세계적 관광지 제2의 하와이보다는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서, 생활의 보금자리로서의 제주도를 원하기에 특별법 저지, 2차 종합개발계획 폐기를 외치며, 또한 이를 추진하는 민자당 타도를 외치며 이 길을 간다.”
1991년 11월7일 오후 가을비가 내렸다. 제주 서귀포 매일시장 인근 한 건물에서 한 청년이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서귀포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하던 양용찬씨. 그는 ‘제주도개발특별법(현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 반대를 외치며 목숨을 바쳤다. 그의 주검이 안치된 서귀포의료원에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의료원에 몰려들었고, 비는 더 거세졌다.
조용하지만 언제나 웃음을 띠고 차분했던 25살 청년의 희생은 제주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제주도 개발에 대한 경각심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고 지금껏 그 울림은 강하게 남아 있다. 특히 30주기를 맞은 올해는 제주 전역에서 대대적인 추모 행사가 펼쳐진다.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를 중심으로 제주여민회, 제주주민자치연대 등 도내 47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등으로 구성된 ’30주년 공동행사위원회’(공동행사위)가 최근 출범했다. 공동행사위는 ‘서른 번째 오늘, 우리 다시’를 주제로 양 열사를 추모하고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30일 밝혔다.
‘양용찬열사 30주년 공동행사위원회’ 상임공동대표를 맡은 고광성 양열사추모사업회장이 지난 2015년 24주기 추모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주의소리 제공
‘서른 번째 오늘, 우리 다시’ 추모제
‘전태일 50주기 우정과 연대’ 연극도
양용찬상 시상·제주대 명예졸업장 등
고광성 공동행사위 상임공동대표는 “지난 30년 동안 제주도는 자본과 탐욕의 섬으로 추락했으며, 제주도민의 삶은 더 피폐해졌다. 양 열사는 삶의 터전, 삶의 보금자리로서의 제주도를 소망했다”며 양 열사의 30주기 추모사업에 동참을 호소했다.
공동행사위는 우선 오는 11월 중순 제주도개발특별법의 모태인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의 전면 개정을 요구하고, 제주사회의 방향을 찾는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또 11월 1~2일 제주시 제주학생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양용찬 30주기와 전태일 50주기를 기억하면 우정과 연대로’라는 주제로 전태일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 구럼비연극단도 11월 말 양 열사와 지역개발 문제를 내용으로 한 <사랑 혹은 사랑법> 연극을 공연한다.
11월7일에는 공동행사위 주최로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양 열사 묘역에서 30주기 추모식을 열고,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와 양 열사가 다녔던 신례초등학교동창회 주관으로 ‘양용찬상’ 수상자 발표와 시상식도 한다. 같은 날 오후 5시부터 제주시청 앞에서는 추모 문화제를 열 계획이다. 추모 문화제에서는 추모 굿을 공연하고 분향소를 운영한다. 양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사진전을 열어 사진집을 펴내는 한편 시화전도 연다. 또 지난 30여년 동안 제주지역의 난개발 현장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주민들의 투쟁 역사를 담은 자료를 찾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기로 했다. 이밖에 제주대 명예졸업장 수여식과 제주대 교정에 열사를 기억하기 위한 동판 설치 등도 대학쪽과 논의할 예정이다. 고향인 신례리 마을 안에도 열사 기억 추모비를 건립할 계획이다.
제주대 사학과 85학번인 양 열사는 대학 1년을 수료하고 군에서 제대한 뒤 복학을 하지 않고 1989년부터 서귀포시 나라사랑청년회 ‘지역사랑’분과에서 활동했다. 1991년 제주지역 시민사회에서는 정부·여당이 강력하게 추진한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이 재벌의 제주도 개발을 돕기 위한 특혜입법이자 제주의 자연환경 파괴를 가속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반대 범도민회를 결성하고, 지역별로 대책위를 구성해 치열한 반대운동을 벌였다. 민주당과 전교조 지부 사무실 등에서 밤샘농성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양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커져 연일 거리시위가 일어났다. 그러나 여당인 민자당은 그해 국회에서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