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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제주

섬에서 섬으로…기억의 활주로를 마주하다

등록 2021-07-09 18:20수정 2021-07-09 18:56

제주 아트스페이스·씨, 오카베 마사오 초대전
홋카이도 마키노우치와 제주 알뜨르의 닮은꼴
오카베 마사오 초대전 ‘기억의 활주로: 숲의 섬에서 돌의 섬으로’가 오는 15일부터 제주시 아트스페이스·씨에서 열린다. 아트스페이스·씨 제공
오카베 마사오 초대전 ‘기억의 활주로: 숲의 섬에서 돌의 섬으로’가 오는 15일부터 제주시 아트스페이스·씨에서 열린다. 아트스페이스·씨 제공

일본 홋카이도 북동부 네무로시에서 10㎞ 남짓 떨어진 곳에 마키노우치 들판이 있다. 그곳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을 보여주었던 옛 일본 해군 비행장 활주로와 엄체호(격납고)가 남아 있다. 1943년 9월 착공해 1945년 6월 완공된 이 비행장은 일본인뿐 아니라 조선인 징용자 1천여명의 눈물과 땀으로 건설됐다. 가혹한 노동과 전염병으로 많은 이들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은 일본의 패전 뒤 사용되지 않고 농지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 출신 오카베 마사오(79)는 지난 2002년부터 비행장 활주로의 콘크리트에 남겨진 발자국을 따라 기억의 편린들을 모으기 위해 프로타주 작업을 해왔다.

2019년 7월, 제주를 방문한 그는 마키노우치에서 봤던 현장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비행장에서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일제가 중국 침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제주도민들을 강제동원해 만든 비행장이다. 해방 뒤에는 국방부 소유가 됐고, 농지로 이용되고 있다. 알뜨르비행장에도 엄체호 19기가 남아있다. 그는 마키노우치와 똑같은 시설이 홋카이도에서 머나먼 제주도의 남쪽 끝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일본 홋카이도 네무로의 마키노우치 옛 일본 해군 비행장에 새겨진 발자국을 프로타주한 작품들. 아트스페이스·씨 제공
일본 홋카이도 네무로의 마키노우치 옛 일본 해군 비행장에 새겨진 발자국을 프로타주한 작품들. 아트스페이스·씨 제공

그는 마키노우치에서처럼 알뜨르의 엄체호 벽에 기대 프로타주 작업을 했다. 프로타주 작업은 흑연과 종이로 이뤄지는 작업이다. 전쟁과 평화, 강제동원의 기억을 프로타주 작업을 통해 담아냈다.

오는 15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제주시 중앙로 아트스페이스·씨(관장 안혜경)에서 열리는 오카베 마사오 작가 초대전 ‘기억의 활주로: 숲의 섬에서 돌의 섬으로’는 작가가 그동안 일본 홋카이도와 한국 제주도에서 작업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자리다. 오카베는 안 관장에게 “고향에 있던 활주로와 거의 비슷한 활주로를 제주에서 봤을 때 너무나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1977년부터 거리를 탁본하는 프로타주 작업을 시작했다. 1979년 프랑스 파리의 한 마을에서도 프로타주 작업을 했고, 1980년대 후반부터는 히로시마의 원폭 피격 흔적을 찾아 프로타주 작품을 만들어왔다. 1996년에는 파리의 유대인 납치에 관한 역사를 묘사한 플래카드를 프로타주한 잊지 말아라’시리즈를 제작하기도 했다.

2019년 제주를 방문한 오카베 마사오가 고길천 작가의 작업실에서 알뜨르비행장 프로타주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미나토 치히로 제공
2019년 제주를 방문한 오카베 마사오가 고길천 작가의 작업실에서 알뜨르비행장 프로타주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미나토 치히로 제공

전시를 시작하는 오는 15일은 76년 전인 1945년 미군의 네무로 지역에 대한 공습으로 400여명이 희생된 날이기도 하다. 작가도 공습 당시 아버지의 등에 업혀 피신했다고 한다. 15일 오후 5시30분부터 태평양전쟁 연구자인 조성윤 제주대 명예교수가 ‘알뜨르비행장’를, 평화활동가 최성희씨가 ‘폭력을 낳은 평화’를 주제로 각각 강연한다. 25일 오후 6시에는 ‘영화로 톺아보기’라는 제목으로 ’반딧불이의 묘’(일본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가, 8월1일 같은 시간엔 ’아버지의 눈물: 두 번의 눈물, 이중 징용’(울산문화방송) 상영이 있다.

안혜경 관장은 “오카베 마사오의 작업은 흔적을 추적하며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가 예술 매체로서 프로타주를 새롭게 만나고 매 순간 망각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기억을 거스르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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